기행문 허난 성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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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갑작스럽게 통보된 여행으로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여행을 가는 것은 처음 이였다. 장시간 차를 타야해서 여행에 대한 기대보다는 약간의 걱정이 앞섰다. 여러 가지 어수선한 마음을 뒤로하고 이른 아침 우리는 차에 몸을 싣고 河南省으로 향했다. 8시간이 넘는 시간을 달려서야 河南에 도착하였다. 우선 3박4일 동안 인도해줄 가이드 분을 만나 한 식당에 들어갔다. 많은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린 이미 중국음식에 적응되었던 상황 이였지만 河南의 음식은 우리에게 잘 맞지 않아 우린 약간의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중국은 워낙 크고 넓은지라 각 지역마다 음식의 맛과 특징이 다르다고 하셨다. 약간의 허전한 배를 뒤로하고 첫 번째 여행지인 少林寺로 발걸음을 옮겼다. 少林寺로 가는 길에 여기저기에서 무술을 배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어린 아이들같이 보였다. 부모가 가난하거나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가정의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가 돌보아줄 여건이 안 되어서 무술학교에 보내어지는 아이들이 대다수라고 하였다. 河南省登封市 의 전체적인 인상은 관광명소에 맞게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잘 정비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지내던 胡北省과 달리 산이 많아 공기가 맑고 상쾌했다. 10분 남짓 지난 후 少林寺에 도착하였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中國武術영화 한편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동경의 대상이었던 中國武術의 발원지라해도 과언이 아닌 少林寺에 드디어 오게 되다니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少林寺는 河南省登封市에 있는 五大名岳의 하나인 崇山의 小室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少林寺의 이름은 소실봉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유래되었다고 하였다. 崇山少林이라고 쓰여 있는 큰 대문을 지나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훈련받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군대를 연상 시켰다. 힘찬 기합소리와 공중에서 매달려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앞에서 사진을 못 찍게 지키는 아이들이 있어서 안타깝게 찍지 못하였다. 처음 들어간 장소는 少林寺 武術管이였다. 입구부터 심상치 않은 열정적 기운이 느껴졌다.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훈련을 받고 역동적인 武術 자세를 취하고 있는 동상들이 많았다. 안에서는 공연이 한창 진행중이였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겨우 앞쪽으로 나와 관람할 수 있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中國武術은 그 명성그대로 한 순간도 놓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동작이 꽤나 역동적이었다. 정말 웬만한 수련으로 할 수 없을 동작들이 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검술 시범은 아찔했지만 가장 흥미로웠다. 무술관은 少林寺 무술의 시범과 중국인 및 외국인의 수련 등과 관광 목적으로 1988년에 국가 관광국에서 건립하여 개관하였다. 少林寺의 명성을 듣고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무술을 배우겠다며 찾아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자 少林寺와 당국은 배우러 오는 사람을 모두 수용한다는 방침과 외국 관광객을 위해 설립했다. 얼핏 보기에도 많은 어린 학생들이 수련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河南省과 중국 정부는 관광명소로써 少林寺를 더욱 발전시켜야 될 것이다. 하루에 5~6만 인파가 이곳을 찾아온다고 한다. 이미 어느 기업 못지않은 경제적 파급 효과를 이끌어내는 장소로 변화되었다. 또 다른 중국의 관광명소인 萬里長城과 견주어 보아도 少林寺는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것들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어린 중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면 상당한 가격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든지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물건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너무 상업성에 치우치게 된 거 같아 원래의 少林寺의 정신과 수련목적에 위배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끊임없는 상업화로 막대한 부를 축척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헛되이 쓰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 자리를 옮겨 사찰 안으로 들어갔다. 큰 나무에 구멍이 깊게 파여 있는 것을 신기하게 보고 있었는데 스님들이 수련을 하면서 뚫은 구멍이라고 하였다. 생각보다 큰 구멍에 놀라웠다. 기대를 많이 하고 찾아갔었던 것에 비해 이곳 少林寺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오히려 돌무늬나 지붕의 모양 등이 더 흥미로웠다. 그렇게 少林寺를 나와 걸어서 조금 더 가면 塔林이라는 곳이 나온다. 탑이 소나무 숲을 이룬 듯이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어쨌든 크고 작은 탑이 많고 모양도 각각 차이가 나고 한국에서 보아왔던 탑과는 전혀 다른 형태들이 많아 신기하였다. 이곳은 少林寺 역대 高僧들의 舍利를 모셔둔 무덤으로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많은 수의 탑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엔 240여개 남아 있다고 한다. 불가의 법에 따라 단지 名僧이나 高僧의 원적 후에만 탑을 만들어 생전의 功績 등을 탑에 새길 수 있었다고 한다. 탑의 형태나 층수 높이와 크기, 표현방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에 따라 스님의 생전 불교계의 지위나 업적 덕망의 높고 낮음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을 끝으로 少林寺 탐방을 마치고 긴 길을 따라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