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오타쿠 가상세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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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서감상문 오타쿠 가상세계 아이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하루를 꼬박 비디오 게임 스크린 앞에서 보낸 뒤, 저는 밤에 제 매킨토시 쿠아드라 950과 사랑하는 꿈을 꾸었어요. 컴퓨터 앞에 알몸으로 선 저는 두 팔로 그것을 껴안고 마치 여자의 살갗을 애무하듯 매끄럽고 차가운 스크린을 애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손가락으로 디스켓 드라이브 입구를 조심스레 벌린 뒤 거기에 페니스를 삽입했어요. 디스켓 드라이브의 내부는 불처럼 뜨거웠습니다. 제가 그 속에 삽입된 페니스를 휘젓자 컴퓨터가 부드럽게 신음하기 시작했어요. 전자 회로들이 페니스 속으로 들어오며 저를 흥분시켰어요. 롬 메모리들은 마치 꽃꽂이 침봉처럼 페니스를 찔러댔어요. 제가 허리 운동을 계속하자 조금씩 조금씩 제 근육들과 혈액, 구리선, 마이크로프로세서, 모터, 플라스틱들이 온통 하나로 녹아들기 시작했고, 저는 오르가슴을 향해 나아갔어요. 순간, 저는 잠에서 깨어났고, 격렬한 흥분 상태에 빠진 저를 발견 했습니다.저는 또 냉장고가 제 페니스를 빨고, 자동차가 저를 올라타고 사랑하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처음에 저는 이런 망측한 꿈들이 부끄러웠어요. 그러나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거의 모든 게이머 들이 이런 유형의 꿈을 꾼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사실 그것은 어머니나 누이를 강간하는 꿈, 또는 아버지를 살해하는 꿈과 크게 다를 게 없을 것 같아요. 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 우리의 가장 은밀한 욕망이 자리잡고 있는데, 컴퓨터와 항구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에게 컴퓨터가 성적 환상을 유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확신컨대, 가까운 미래에 인간과 기계는 특별하고도 강렬한 관계로 결합될 것입니다.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컴퓨터 게임에 그토록 끌리고 있는지도 모르지요.”어릴 때부터 비디오 게임기와 함께 살아온 와타나베 고지`Watanabe Koji는 자기가 꾼 꿈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꿈을 갖고 있다`I have a dream”고 마틴 루터 킹은 말했다. 머나먼 60년대에 평화주의자 목사는 백인이 흑인과 손에 손잡고 걷는 유토피아적 세상을 꿈꾸었다. 와타나베는 좀더 범속한 차원에서 새로운 인간이 자기의 반려자와도 같은 기계와 손에 손잡고 나아갈 날을 꿈꾼다.이 새로운 인간을 우리는 ‘호모 비르투엔스`Homo virtuens’라고 부르련다. 와타나베 고지는 게이머이다. 그에게는 비디오 게임이 삶의 이유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1962년에 태어난 그를 동료들은 전설적인 게이머로 평가한다. 그는 모든 비디오 게임을 알며, 게이머들이 모이는 모든 PC방의 주소를 갖고 있다.많은 사람들 가운데 전설적 게이머를 어떻게 식별하는가? 쉽다. 전설적 게이머는 1초에 16번 ‘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엄지손가락으로 조이 스틱의 버튼을 16번 눌러 적들을 섬멸할 수 있어야 한다.
한번 시도해보라. 하여 전설로 향하는 길이 얼마나 먼지 가늠해보라. 와타나베는 자기의 평판이 지나치다고,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빨리 쏠 수 없다고 말한다. 게이머 세계에서는 일찍 늙는다. 와타나베 고지의 꿈이 아무리 괴상망측해 보인다 해도,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기술에 젖어 살아온 세대가 갖게 되는 성적 환상의 한 반영일 뿐이다. 미국에서 실험된 바 있는 사이버섹스, 혹은 가상 성교는 사실 일본의 게이머들이 꾸는 꿈의 소프트 버전에 불과하다.호모 비르투엔스는 컴퓨터와 사랑을 하며, 뇌에서 뇌로 정보를 직접 입출력하는 접속`interface 케이블을 통해 의사 소통한다.비디오 게임 제작자로서 오타쿠 세계의 또 다른 전설적 인물 미우라 아키히토`Miura Akihito는 이 통신 방식을 이렇게 옹호한다.
“말로 소통하는 것은 아주 어려워요. 많은 뉘앙스를 잃게 마련이지요. 책을 통해 취득한 어휘들로 얼마만큼의 감각들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게이머들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것은 하나도 놀라울 게 없습니다. 그들이 체험하는 감각은 종종 소통이 불가능해요. 말을 통한 온갖 시도들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소통을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따라서 한 뇌에서 다른 뇌로 어떤 자극에 대한 감각들 일체를 실제 시간 동안 전달하는 것입니다. 마치 한 컴퓨터 하드 디스크의 정보를 다른 하드 디스크에 복제하듯이.”
그러나 20세기 말의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미우라 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뇌와 뇌를 연결하는 접속 케이블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를 위해서는 아마도 호모 비르투엔스의 뇌에 접속하는 장치의 국제 규격부터 정해야 하리라. 이제 현장으로, 도쿄 한가운데에 위치한 PC방으로 가보자. 한 게이머가 의자에 앉아, 흉악한 얼굴의 두 거한이 맨주먹으로 대결하고 있는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앞에 놓인 비디오 게임기의 단추들을 통해 그는 컴퓨터의 싸움꾼에 맞서 싸우는 자기 편 싸움꾼의 뇌가 된다. 펀치·스트레이트·발길질·공중 점프·방어·피하기 등등을 동원하여 각 싸움꾼은 상대를 약화시켜 쓰러뜨리려 애쓴다.
이 게임은 다름아닌 「스트리트 파이터 II Street Fighter II」로서 일본의 비디오 게임 제작사 캡콤Capcom에 의해 처음으로 고안된 뒤 매년 여러 버전으로 갱신되며 전세계 PC방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를 둘러싼 10개 가량의 다른 비디오 게임기들이 내는 소음에 무심한 우리의 게이머는 디지털 싸움꾼과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 그는 자기 싸움꾼의 입장에서 컴퓨터 쪽 싸움꾼의 공격을 피한다. 그의 온몸이 싸움에 참여하고 있다. 한 게이머가 바로 옆의 비디오 게임기에 와 앉아 기계에 100엔짜리 동전을 밀어넣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지금껏 관찰해온 게이머의 적수가 된다. 주먹질·발길질·공중 점프·방어·피하기가 시작된다. 서로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서로 인사조차 나누지 않고, 두 사람은 스크린의 싸움꾼들을 통해 냉혹한 대결을 펼친다. 그들 주위에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주위의 반응에 무심해 보이는 그들은 모든 의지를 스크린에 집중한 듯하다. 대결이 끝나자 패자는 말 한마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의자에서 일어나 자리를 뜬다.말해서 무엇하랴? 또 무슨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우리는, 상대의 가장 깊은 생각까지 읽으면서도 철두철미하게 냉정한 대결을 벌인 두 젊은이를 보았다. 그들은 장기에서처럼 세 차례의 공격을 예측하여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려 했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그들 사이에는 일시적으로나마 일종의 공감 같은 것이 생겨난 듯싶다. 역설적인 것은, 사람들이 가상적으로 소통하면 소통할수록 현실적으로는 덜 만난다는 사실이다. 정보 고속도로는 사람들을 스크린 앞에 못 박음 으로써 현실의 고속도로를 텅 비게 만든다. 교통 관측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조만간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하리라. 그리고 에이즈 예방을 위해서는 콘돔보다 사이버섹스가 더 효과적 이리라. 다윈Darwin은 인간 진화의 계통수를 보완해야 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위에, 목하 도래하는 호모 비르투엔스를 위치시켜야 하리라. 호모 사피엔스는 불의 발견 이래로 경험적 인식을 통해 진보해왔다. 그의 세계는 직접 접촉할 수 있는 현실의 세계, 곧 뉴턴, 코페르니쿠스, 데카르트의 세계였다. 경험은 지식의 근원이었다. 반면에 호모 비르투엔스 에게는, 자주 골치를 썩이고 늘 중복적인 이 현실, 예컨대 지하철·일·잠 등과 같은 현실은 그 자체로서 도무지 소용에 닿지 않는다. 그는 경험이 꿈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우주 비행사·모험가·운동 선수 또는 플레이보이의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키기만 하면 그는 가상적으로나마 이 현대의 영웅들이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온갖 감흥들을 전부 다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일상적 현실로 돌아가는가? 호모 비르투엔스는 대리적 삶을 산다. 그는 깬 상태에서 꿈꿀 권리를 요구한다. 그는 자기의 꿈들을 산다. 나르시스처럼 물에 비친 자기의 반영에 의해서가 아니라 TV나 컴퓨터 스크린이 제공하는 자기의 이미지에 의해 매혹된 이 가상 인간은 시험관에서가 아니라 멀티미디어 컴퓨터의 스크린으로부터 태어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미래형으로 말하는가? 현실보다 가상에 더 매혹된 이 새로운 인간은 벌써 존재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그를 오타쿠라 부른다. 오타쿠 들은 미디어와 관련한 온갖 변화들로부터 비롯된 상처를 고스란히 떠 짊어지고 있는바, 아직은 불완전하나마 호모 비르투엔스의 첫 견본이다. 딸랑이 대신 리모컨을 쥐고 태어난 오타쿠 들은 멀티미디어 1세대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호모 비르투엔스의 조상으로 기억하리라. 그들은 소비화 운동(모든 것, 심지어 꿈조차도 살 수 있다)과 학교에서의 극심한 경쟁을 낳은 고속 경제 성장 시대에 자랐다. 학교에서의 스트레스에 유난히 민감한 오타쿠 들은 자기들 속에 갇혀 현실보다 만화 영화의 주인공들과 놀기를 더 좋아한다.
80년대에 생겨난 사회 현상으로서 2000년대의 젊은 세대를 예고하는 이 젊은이들은 일본 사회를 구성하는 세 가지 중심 요소, 곧 교육·정보·소비가 한데 섞여 과도한 방식으로 승화된 결과이다. 이 혼합은 폭발적이었고, 그로부터 결과된 빅뱅은 오타쿠들을 낳았다. 교육·집단·사회에 의해 학대당한 오타쿠 들은 환상의 세계 속으로 도피하여 현대의 미디어들이 제안하는 이미지들로 허기를 채운다. TV·잡지·만화는 그들의 일상이었고, 이제는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의 이미지가 그것들을 교대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속속들이 잘 아는 소비 사회와 모든 관계를 끊은 것은 아니다. 죽어가는 나무 위에 생겨나는 겨우살이처럼 그들은 일본 사회에 접목되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그것의 양분을 빨아먹기만 한다. 사회 부적응아가 된 그들은 인간 관계를 경계하며,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인간들과의 교제보다는 만화와 만화 영화의 주인공들이나, 접근이 불가능한 TV 스타들과의 마음 편한 가상 교제를 더 좋아한다. 오타쿠란 낱말 그 자체도 사실은 이 젊은이들이 자기들끼리 사용하는 일종의 비인칭 존칭으로서, 다른 인간들과의 소통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그들의 주요 통신 수단이 전자 통신망이나 인터넷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가명을 사용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통신망의 구축은 진정한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창출로 이어지는바, 이 문화는 스스로의 기준과 결집점들, 그리고 전설과 언어를 갖고 있다. 주변적 현상이기는커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