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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시대(1476~1506)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연산군 시대(1476~1506)
공길과 공결.
공결-연산5년
연산 5년 12월 30일자 실록에 공
결과의 만남이 나타나 있다. 인양
전에서 행해진 나례(의식의 한 형
식)에서 우인(광대) ‘공결’이란 자
가 공길처럼 ‘유식한 문자’(?)를 쓰
다가 왕의 노여움으로 곤장 60대
를 맞는다.
이때 승지 등이 ‘공결은 배우로서
단지 놀이하는 것을 알 뿐인데 어
찌 예절로써 책망하오리까’
하고 간한다
공길-연산군일기 11년 12월 29일 기사.
“《주례(周禮)》에 방상씨(方相氏)가 나례를 맡아 역질을 쫓았다면
역질 쫓는 것과 나례가 진실로 두 가지 일이 아닌데, 우리 나라 풍속이
이미 역질은 쫓았는데 또 나례를 하여 역질을 쫓는 것은, 묵은 재앙을
쫓아버리고 새로운 경사를 맞아들이려는 것이니, 비록 풍속을 따라 행
하더라도 오히려 가하거니와, 본디 나례(儺禮)는 배우의 장난으로 한
가지도 볼 만한 것이 없으며, 또 배우들이 서울에 떼를 지어 모이면
표절(剽竊)하는 도둑이 되니, 앞으로는 나례를 베풀지 말아 옛날 폐단
을 고치게 하라.” 하였다.
이보다 앞서 배우 공길(孔吉)이 늙은 선비 장난을 하며, 아뢰기를,
“전하는 요·순(堯舜) 같은 임금이요, 나는 고요(皐陶) 같은 신하입니다.
요·순은 어느 때나 있는 것이 아니나 고요는 항상 있는 것입니다.”
연산군과 사화
불운한 출발
사화의 시작
폐정의 원인
중종반정과 몰락
불운한 출발
연산군(1476~1506)
조선 제10대왕으로 휘는 융이다. 성종의 아들이며, 어머니
는 우의정 윤호(尹壕)의 딸로 정현왕후(貞顯王后)이다.
성종에게는 정실 소생으로 뒤에 11대왕이 된 중종이 있었으
나, 1486(성종 14) 연산군이 세자로 책조봉될 때에 중종은
아직 태어나기 전이라 그의 무도함을 알면서도 그냥 세자로
삼았다 한다. 그리하여 1494년 12월에 성종의 승하와 함께
왕위에 올랐는데, 재위 12년 동안 너무도 무도한 짓을 많이
하였으므로 폐위, 교동(喬桐)에 안치되어 있다가 그해 11월
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