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종교 젠더 그리고 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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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종교 젠더 그리고 성3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중 2번째 수업시간의 내용과 관련된 ‘종교, 젠더 그리고 성’ 부분을 읽었다. 서양 문명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으로 이루어진다. 헬레니즘은 그리스와 관련된 것으로 사상과 논리를 중시하는 서양 철학과 관련된다. 반면, 헤브라이즘은 기독교와 관련된 것으로 행동과 실천을 강조하는 서양 윤리와 관련된다. 서양의 육체적 성을 경시하는 경향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플라톤의 영혼 불멸설 또한 그리스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플라톤은 모든 것은 이데아와 물질이 결합된 것이라 하였다. 특히 이데아는 완전한 것으로 부족한 것을 뜻하는 물질보다 우월한 것이다. 그 밖에도 이데아-물질은 영혼-육체, 이상-감정, 남자-여자, 인간-자연을 상징한다. 이는 여성적 원리의 물질은 수동적으로 형태를 외부로부터 받아들여야하므로 남성적 원리의 형상 또는 이데아처럼 불변하는 영원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정신 - 물질 이원론을 뒷받침한다. 플라톤과 유사한 입장을 가졌던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은 질서 있는 것이 불규칙적인 것보다 우월하다고 여겼다. 이는 명확하고 분명한 남성적 원리가 불분명하고 모호한 여성적 원리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뜻한다.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자와 영혼이 연결된 것을 귀중하다고 여기며 영혼이 남자의 정액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여자는 남자보다 더 적은 영혼을 가지고 있거나 아예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여성을 단지 수동적인 존재로만 보며, 여성에 대한 철학적·종교적 불평등을 조장할 수 있다, 베이컨 또한 존재론적 이원론의 영향을 받아 남성적 앎이 여성적 자연을 지배해야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러한 철학자들의 남성 우월주의와 여성 혐오주의는 왜곡된 여성관을 만들어 , 마녀사냥과 여성 사제직을 반대하는 현상을 발생시켰다. 여성 사제직에 대한 반대는 남자와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보는 성서 전체의 ‘사랑’ 이라는 이념을 이해하는 것을 통해 부정될 수 있다. 위와 같은 남성우월주의와 여성 혐오주의가 생겨난 근원은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창조되었기 때문, 여자가 남자를 타락시켰기 때문 그리고 하나님이 남자에게 자연을 정복하라 하였기 때문’ 이라는 종교적 이유들이다.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는 성을 생명의 기본적 힘이라고 생각하여 관용적으로 바라보았다. 또한 누드에 대해서도 관용적이었으며, 동성애적 사랑을 이상화시켰다. 이 문화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 존재였으므로 여자와 남자간의 사랑보다 남자와 남자간의 사랑을 이상적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로마인은 그리스인과 달리 동성애와 이성간의 사랑을 유사한 것이라 생각했다. 기독교에서도 원래는 육체적 쾌를 긍정적으로 여겼다. 성서에는 직접적으로 수음을 비난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그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베커가 성서 속에서 ‘오나니즘’을 말하며 반박했다. 구약성서에는 성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며 목적은 자손 번식이라 여겼다. 그러나 공공장소의 누드는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였다. 신약성서에는 예수가 성적 죄를 지은 사람들을 동정하고 용서한 내용이 들어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기독교적 금욕주의를 주장하였다. 특히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퀴나스는 올바른 방식과 목적, 상대가 있을 경우에 하는 성관계는 자연스럽다고 여겼으며 그 외에는 부자연스럽다고 여겼다. 개신교 역시 성의 중요한 목적으로 자녀 출산을 들었다. 또한 미국 개신교는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근본주의적, 자유주의적, 중도적 태도를 가진다.
우리는 낙태와 성매매 금지법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야하며 충분한 사회적 토론을 해야한다. 또한 노인의 성도 윤리적, 인권적 차원에서 인정해야한다.
2) 나의 생각
먼저 수업을 들으면서 대부분의 내용이 의아했었다. 서양 철학의 일부분이 기독교에 영향을 줬다는 점과 그리스에서는 동성애 풍습이 있었다는 점은 처음 들어본 것들이었다. 남성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남자와 남자간의 사랑을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 시대적 가치관으로는 이해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남성 우월주의와 여성 혐오주의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간의 사랑을 이상적으로 여긴다. 이처럼 성에 대한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화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고대 서양 철학자들 중 특히 플라톤의 이데아와 물질로만 나누는 이원론적 사고는 오늘날 꼭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A가 아니라면 B일 것이라는 사고는 그 중간의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 마저 배제시켜버린다. 수업시간에 배웠듯이 사람은 남성성을 100%로 가질 수 있겠지만 여성성을100%로 가질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에 위치할 수도 있다. 만약 이원론적 사고를 여기에 적용시킨다면 그 중간의 사람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다행이도 시대가 바뀔수록 이러한 사고는 많이 줄어들었다. 나는 이와 같은 현상이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에서는 원래 육체적 쾌를 긍정적으로 여겼다는 사실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서양 철학의 영향을 받아 변화한다. 이와 같이 내용이 변화할 때, 학문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단순히 사람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여태까지 성서 속에서 수음이 금지된다고 알았다. 그러나 이는 ‘베커’의 ‘오나니즘’ 을 통해 전해진 것이지 실질적으로 성서에는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새로 배웠다. 또한 신약성서의 사도 바울이 성적 금욕주의 (동성애=비정상적 성행위 등) 를 주장한 것도 유대교 상식과도 맞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두 사람들의 주장과 생각은 성서와 기독교의 원래의 주장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수업시간에 말했던 LGBTQ 중 동성 간의 사랑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허용되었으나 기독교에서는 옹호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들의 사랑, 동성 간의 사랑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동성애자들 또한 이성애자들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고 싶어하는 것은 동일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지 좋아하는 성별이 같은 지, 다른 지의 차이일 뿐이라고 여긴다.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수술을 통해 변화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 뿐 만 아니라 자아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변화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나는 항상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변화를 택한 사람들과 그의 부모님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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