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를 통해 배우는 일의 양의 성과 미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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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를 통해 배우는 일의 양의 성과 미묘함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은 일본사회의 존재방식에 커다란 과제를 안겼다. 자원봉사자가 지닌 위치나 자원봉사자에 대한 시선에 큰 변경이 가해진 것이다. 다종다양한 자원봉사자 활동이 무리지어 나타나고 여태까지 자원봉사자 활동을 하지 않던 많은 이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자원봉사자의 중요성이나 의의가 새로이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길게 이어져 온 자원봉사자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仁平, 2011)의 그림자를 감추고 자원봉사자의 실천을 거리낌 없이 찬양하는 논의가 증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긴급할 때에 자원봉사자의 존재는 그 자체로 정말 어떤 경우, 누구라도 환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때문에 이후 평정심을 되찾은 사회에서 자원봉사자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는 새삼 검토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 같다.
여기서는 본학회(일본복지교육자원봉사자학습학회)의 ‘자원봉사자 학습’이라는 말에 주목하겠지만 이 말 자체는 많은 것을 함의하고 있다. 나가누마 유타카(長沼豊)에 따르면 자원봉사자 학습에는 ① 자원봉사자 활동을 위한 학습 ② 자원봉사자 활동에 관한 학습 ③ 자원봉사자 활동에 의한 학습 세 가지가 포함되어 ‘특히 학교교육에 두어야 할 자원봉사자 학습은 ①의 준비학습(계기를 만드는)으로서의 성격이 강하여 일반적인 자원봉사자 학습과는 구별된다’(長沼, 2003: 117).#179
본 장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것은 그 가운데에 ③이다. ‘자원봉사자를 통해 배운다’라는 것이야말로 자원봉사자 본인에게나 사회에나 장기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우선 자원봉사자와 사회와의 관계에 관해 사회학적 시점에서 고찰한다. 다음으로 ‘자원봉사자를 통해 배운다’는 것에 대해 교육학적 고찰을 시도한다. 전체적으로 ‘자원봉사자를 통해 배운다’는 것은 산뜻한 것이 아닌, 곧 다양한 양의성을 잉태한다는 말을 하고자 한다.
제1절 311 후에 무엇을 생각하면 좋을까?
우선 ‘311’ 후에 무엇을 생각하면 좋을까라는 점에 관해 간단히 논하고자 한다. 학교교육의 세계에서 방재교육이라든가 학교의 리스크 관리라든가 학교의 안전대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자체는 교육행정이나 학교운영에 관한 기술적 차원의 이야기로 학문적인 물음으로는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둘째, 교육 분야에서 잘 이야기되는 것은 이번 대지진을 경유하여 위험한 상황 속에서 상호부조와 같은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위험한 상황 하에서만이 아닌 일상적인 사람과 사람의 얽힘이나 타자에 대한 사고방식의 형성 등이 사회의 힘으로 강조되고 있다.#180 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본학 회 사람들 또한 어지간히 친숙한 테마라고 생각된다. 최근 유행어인 ‘사회관계자본’(social capital)의 축적이 지역이나 조직 수준에서 중요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사회 제도의 설계에 관한 결정을 정치나 행정에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좁은 이해관계를 초월해 광범위한 시민이나 주민이 스스로 사회의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점이다.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의 문제가 이 과제를 단적으로 부상시켜 놓았다. 원전사고 문제가 특별한 것은 이토록 중요한 정책문제에 관해 일부 사람들이 제멋대로 룰이나 기준을 만들어 결정하고 돈을 배분하는 일을 포함해 자신들의 형편에만 좋게 그 제도를 운용하고자 변경하기 때문이다. 전문가, 사업가, 관료, 정치가와 같은 ‘원자력 관계자’인 이들이 사회의 중요한 조직을 자신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그것이 시스템으로서 파탄났다는 문제인 것이다. 중요한 문제에 관해 시민이나 주민이 그것을 말하고 논의하고 판단하고 체크하는 것과 같은 사회의 존재방식이 결여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커다란 문제이다. 정치가나 행정 혹은 전문가에게 위임하지 않고 사회의 형성이나 변경에 시민이 큰 역할을 담당하는 일본사회로의 전환이 가능한가 아닌가가 이번 사고의 교훈으로 질문되어지고 있다. 교육은 그 부분에 관해서 어떤 역할을 부과 받을까?
앞의 두 문제, 곧 ‘서로를 돕는 상호부조나 얽힘이 필요하다’는 것과 세 번째 문제, 다시 말해 ‘중요한 결정을 정치나 행정에 위임해 버리지 않는다’는 점의 관계를 어떻게 사고하면 좋을까? 양자는 상보적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대립하는 측면도 있다. 상호부조나 얽힘은 이른바 갈등을 잠재하지 않을 수 없는 형태로 서로 관계 맺어져 있다. 그에 비해 ‘중요한 결정을 정치나 행정에 위임해 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기존의 정치나 행정의 존재방식에 대한 다른 논의를 세우는 것을 포함하는 한에서 일정한 긴장이나 갈등이 예상되며, 본래부터 ‘중요한 결정’에는 다른 입장, 의견이나 이해의 대립이 결부되어 선택이나 결정을 둘러싼 시민주민 사이의 첨예한 대립이 있는 것이 보통이다(원전의 재가동 문제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181
‘자원봉사자를 통해 배운다’는 것은 자칫 상호부조나 얽힘에만 눈을 빼앗겨 시민주민이 정치나 행정을 자신의 손으로 바꾼다는 측면이 결여되어 버리고 말지 않을까? ‘자원봉사자를 통해 배운다’ 자체에 오히려 이 세계의 폭이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세계에 관여하는 방식이 국한되어버리는 일이 일어나 버리지 않을까?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위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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