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사회의 성격은 모두가 중심이 되는 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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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래사회의 성격은 모두가 중심이 되는 세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수렵채취사회의 사람들의 삶의 주기는 세 단계를 거친다. 어린 시절, 어른, 그리고 나이든 시절이 그것이다. 어린시절에는 어른이 되기 위한 초보적인 사회화가 진행되며 어른으로의 전환은 집단의 충분한 기능의 일원으로서 인정될 때이다. 나이든 단계에서는 행동성의 단계적인 감소가 느리게 진행된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에 복종적인 위치를 점하나 수렵채취사회에서는 극적인 대조를 보인다. 수렵채취사회에서는 물론 가장 큰 권력은 큰 수렵에서 독점적인 힘을 가지며 많은 음식을 제공하는 자(남성)가 가지고 있지만 여성은 집단의 기여에 있어서 극단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수렵채취인들은 현대인들과는 아주 다른 생각을 갖는데 전체로서의 인생을 여러 가지 힘들과 환경의 영향으로 초자연적인 신성한 것으로 보며 신성하고 가치 있는 대상을 갈망하는데 이에 대한 초기의 종교적인 표현은 토템이다.
수렵채취사회는 정착과 잉여의 생산 전 까지 계급이 없었으며 어업공동체인 북아메리카의 태평양 연안 사람들처럼 제한적인 범위만이 정착을 하였다.
2) 고.중세 농경정착문명 - 원형사관의 형성 - 토지와 정주, 공간중심의 세계관
3) 고.중세 유목이동문명 - 선형사관의 형성 - 가축과 이동, 시간중심의 세계관
고대사회-일에 대한 농경사회의 지향은 수렵채취와는 다르다. 수렵채취단계에서 동물과 식물이 가지고 있었던 신성한 것으로서의 지위가 땅으로 옮겨갔다. 일에 대한 농부 적 지향의 새로운 요소는 풍부한 수확의 중요성으로 초점이 맞추어졌다. 수렵 채취인들은 잉여에 대한 필요도 유용성도 없었으나 농경사회에서는 잉여에 대해 더 크게 갈망하게 되었다. 거대한 수확은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유목생활을 병행하였다.
잉여의 축적으로 인해 외부 집단에 대한 약탈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가능성은 무사계급을 창조하였고 농경사회의 내부-감시(inward-looking; 내부안전의 확보 또는 보호)의 본질을 증가시켰다. 제국의 농경사회는 풍부한 곡식이 존재하며 소수가 거대한 농경사회를 정복했으며 이를 관리하고 노예를 부리는 특징에 기초한다. 소수의 정복과 농경기술의 향상에 기초하여 계급적인 제국은 거대하게 성장했다. 수천의 사람들은 정복된 땅에서 농업 잉여를 강탈당했고 새로운 장인 기술이 황제의 취향에 따라서 발전했다.
중세 시기의 일상 삶의 본질은 사회에서의 신분에 의존했다. 남성 귀족들은 예절을 따르고 사냥을 하거나 그들의 현존과 이용가능성에 따라 의무에 종사했고 여성 귀족은 바느질을 하며 사회화되었다. 농노들은 땅에 얽매여 살았고 끝없이 일에 종사했다. 도시 직공은 농촌과는 구분되는 생활주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가족일원을 돕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했고 길드내의 규제를 받았다.
봉건사회가 지나가고 현대 산업사회로 옮겨가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오랜 동안 역사적인 관심거리였으며 현대 사회학의 기초자들, 마르크스, 막스베버, 에밀 뒤르켐 등에 있어서 중요한 관심사였다. 이 전환은 인구의 팽창, 상업, 시장 등의 팽창을 가져왔다. 1천 년에서 1천 5백 년경에 수많은 도시들이 생겨났고 이 도시들은 노동의 분화가 다른 지역의 독특한 근원에 기초하는 지역적 전문화의 기초가 되었다. 십자군 전쟁은 시장의 확대시켰고 신대륙의 발견은 유럽경제를 부흥시켰다. 이로부터 상인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시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4) 근현대 산업문명 - 나선형사관 - 자본, 시공연속체 중심의 세계관
자본주의의 초기 형태는 생산을 조직화하는 방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업을 조직화하는 방식에서 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농업생산물이나 생산물에 대한 상인들의 독점에 의해 나타났다. 자본주의의 통제는 장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큰 힘을 갖게 되었다. 직업의 사회적 관계는 기초적으로 선대체계로 바뀌었다. 선대제에서 산업자본주의의 전환은 폭력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땅에서부터 강제로 농노들을 밀어내고 공장으로 몰려들게 했다. 공장체계는 선대제와는 달리 한 곳에 모여 있는 집중화된 상태로 노동자들을 모아둔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리듬과 조건보다는 고용주의 독재에 의한 강제가 진행된다. 노동자들의 지위는 산업혁명의 초기 단계동안 빠르게 나빠졌다. 이러한 하락은 노동 숙련의 중요성이 저하되는 결과로부터 나왔다. 또한 초기 산업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여성과 어린이 노동이었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관여는 영국 식민지에 대한 군사적인 지탱의 형태로 초기 산업화시기에 나타났다. 영국은 중상주의라고 불리 우는 자유경제를 지지하나 영국경제의 안전을 위해 극소적인 개입을 취했다. 19세기가 끝나고 20세기가 시작되는 시대에 기업의 조직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크기의 증가와 집중화는 오늘날의 질서가 되었다.20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경제조직의 증가된 크기는 기술의 새로운 형태에 대한 가능성과 노동 통제의 새로운 수단을 가져왔다. 기술에 따라 직업의 전문화가 증가되었다.
5) 미래 정보화문명 - 구형사관 : 나=우리=누리로서 모두가 중심이 되는 세계관
서비스의 성격이 다양해지고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기능을 필요로 하는 전문직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특히 교육, 건강 등가 같은 인간생활수준의 향상과 밀접한 복지 분야의 발달이 예견된다. 정보와 통신, 컴퓨터산업의 발달로 정보화 사회는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정보의 소유와 통제를 중심으로 한 갈등과 정보의 노출 및 악용으로 인한 피해, 피상적인 인간관계의 보편화, 실업률 증가 등이 그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갈 때는 바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농경사회에서 비약을 했다는 말이다.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움직여 왔던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는데 있어서 다시 한 번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디지털 혁명’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갈 때는 대단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면서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넘어갈 때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다음 세상은 그것을 대비해야만 정보화 사회를 뛰어넘은, 그 다음 사회에서 뒤쳐지는 사람이 아니고 앞으로 열리는 21세기,22세기의 주역이 되지 않을까한다. 나=우리=누리로서 모두가 중심이 되는 세계가 올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르트르가 지적하듯이 인간의 주체적 삶 속에는 필연적으로 타자의 존재가 근거로서 존재한다. 는 생각을 하여야 할 것이다. 타자에 대한 관심을 통해서 비로소 인간은 개인으로서의 자기 삶을 형성하게 된다.(사르트르, {존재와 무}) 타자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때, 생활세계는 공간 속에 은폐되며 주체적 삶은 일상적 삶으로, 타자는 외부 존재자로 전락된다. 인간의 존재의미는 단순한 개별적 개인들이 모여서 도출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무수한 정보들이 모여서 인간적 삶의 현장, 즉 생활세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는 원천적으로 생활세계 속에서만 의미 있게 존립된다. 진정한 정보는 인류가 자신의 삶을 실현하기 위한 토대이며, 그러한 정보들의 올바른 관리를 위한 사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정보화 사회이다. 정보들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위한 주체적 투쟁의 역사이며, 역사성 속에서 인간의 인류성이 생동적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인류적 정보들의 올바른 관리는 인간으로서의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부여된 책무이다.
6) 요약 및 한국교육에의 시사점
원시시대 수렵채취문명의 역사관과 세계관은 종교와 여성의 두드러지는 문화로 흘러왔고 .중세 농경정착문명, 유목이동 문명은 원형사관의 형성, 선형사관의 형성 이라고 볼 수 있는 토지와 정주, 공간중심의 세계관으로서 제국주의, 중세시기를 거쳐 .봉건주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중대사건이 문명을 발전시켰고 근 현대 산업 문명으로 와서 나선형 사관, 자본, 시공연속체 중심의 세계관으로 볼 수 있는 생산을 조직화하는 방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업을 조직화하는 방식에서 성장했다. 또 세기가 흘러 미래 정보화문명이 대두되면서 구형사관 과 나=우리=누리로서 모두가 중심이 되는 세계관이 대치되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이 시점에서 생각 해 보아야 할 것은 지금까지의 세계관은 서양문명중심의 발전을 공부하고 알고 있을 수밖에 그로 인해 우리가 따라가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사관을 우리 한국이 어떻게 대처하고, 받아들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서구 사회는 근대적 인간 이념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극복하고 공동체적 삶에로의 진입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다. 또한, 20세기 중반에 집중적으로 논의된 의사 소통론을 통해서 공동체적 삶의 근거를 형성함으로써, 개인주의적 사회제도를 공동체적 사회제도로 개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에 반해서 우리의 사회는 근대적 서구 문명의 추종자로서 정보의 개별적 생산과 관리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공동의 지적 재산을 개인적 재산으로 착각하고 이에 대한 개인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망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주의적 태도에 입각해서 형성되고, 운영되는 우리의 현실에서 정보의 개인 소유는 당연한 현상일 수 있지만, 우리의 현실이 개인주의적 태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적 태도는 자연과학적 태도의 정당화를 수행한 서구 근대 철학의 학문적 방법론으로부터 심화되었다. 이것 또한 서양의 것이다. 우리는 우리 한국인들은 과학적-객관주의적 태도에서 수행된 일체의 해명을 괄호치고 원초적으로 드러나는 현상 자체에로 환원하는 새로운 태도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우주를 끌어안을 수 있는 사관을 가지고 인간과 세계의 분리가 해소될 때 우리에게 주어진 현상이 개인적이고 상대적이라는 해석도 소멸된다. 서양의 무조건 적인 따름이 아닌 우리 한국인의 주체적인 의지로서 정보화 시대, 미래의 시대를 대비하여야 한다. 정보들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위한 주체적 투쟁의 역사이며, 역사성 속에서 인간의 인류성이 생동적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인류적 정보들의 올바른 관리는 인간으로서의 우리에게, 한국인에게 교육적, 역사적으로 부여된 책무이다. 나=우리=누리를 끌어안는 실천하는 사관으로서의 주체적인 한국인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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