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칠정이 모두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변은 조선 후기 성리학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300여년 간 많은 성리학자들이 사단칠정에 대한 해석을 자기 철학의 중심문제로 삼았고 이러한 추세로 인해 학파가 분기(分岐)하게 되었다.
<사단칠정론의 일반
사단칠정 문제에 대한 이황의 이러한 견해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設)이라 불린다.
<사단칠정론의 기본개념>
사단칠정론은 성리학의 기본개념 중 하나
사단(四端)이란 맹자(孟子)가 실천도덕의 근간으로 삼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하며,
사단은 인간의 이(理)에서 발(發)하고, 칠정(七情)은 인간의 기(氣)에서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이 후 이 사단칠정론은 유학자들 사이에 오랜 동안 논의되어 이른바, ‘사칠변론’이 생겼으며, 그 중에서도 퇴계와 기대승(奇大升)과의 논쟁은 유명하여 <사단칠정분리기왕복서(四端七情分理氣往復書)>라는
사단칠정론에도 그대로 이어져 순선(純善)인 사단(四端)은 이발(理發)의 결과이고 유선악(有善惡)인 칠정(七情)은 기발(氣發)의 결과이므로, 결국 사단과 칠정을 별개로 취급하여 ‘사단대칠정’ 논리를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이는 이발을 인정하지 않고 ‘발하는 것은 기이며 발하는 까닭이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논란을 편 편지로 유명하다. 본관 행주(幸州). 자 명언(明彦). 호 고봉(高峰) ·존재(存齋). 시호 문헌(文憲). 전남 나주(羅州) 출생. 1549년(명종 4)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5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고 사관(史官)이 되었다. 1563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주서(注書)
사단은 리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고 한 것을 이황이 “사단은 리의 드러남(發)이요, 칠정은 기의 드러남”이라 고친 것에 대하여 기대승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1) 사단과 칠정의 의미
사단(四端; 네 실마리)은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네 실마리는 인간의 본성의 선함[미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