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생애
1. 1910년 9월 23일
서울 통인동 154번지에서 부 김연창과 모 박세창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
본명 : 김해경(金海卿)
2. 1913년
백부의 집으로 옮겨 그곳에서 성장. 5세에서 7세까지 백부 밑에서 한문 공부.
3. 1917년
신명학교 입학.
4. 1921년
신명학교 4년 졸업. 조선불교중
소설), 첫사랑의 실연을 감상적으로 노래(장편시)
파리로 돌아온 그는 M.자코브, A.살몽 등의 시인과 피카소, 브라크 등의 화가와 함께 새로운 예술운동을 시작
입체파·야수파 화가들과 친교를 맺고 여러 잡지에 시 ·평론 ·소설을 기고했음.
음악적인 글
대개 시에서나 요구되던 극단적인 수준
소설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등의 기록에서 그의 지성과 감성이 매우 서구지향적이며 현대지향적이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서울로 돌아와 이광수에게 사사하면서 「적멸」(1930)을 필두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소설이 신변체험이나 심리묘사에 주력하고 의식의 흐름 수법이나 영화
4. 근대의 부정성에 대한 풍자: 채만식의 『태평천하』와 『탁류』
1935년 카프의 해산은 리얼리즘 소설의 변화를 초래했다. 리얼리즘 소설이 어떤 방식으로건 현실을 바라보는 전망, 곧 현상을 취사선택하는 관점을 요구한다고 했을 때, 카프의 해산은 이전에 존재했던 사회주의적 전망이 더는 가능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면모를 보이게 되고『타락자』(1922)와『조선의 얼굴』(1926)등 두 권의 단편집을 내었다.
초기에는 신변체험소설들을 썼으나 차츰 그의 필치와 문학적 기교를 가다듬어 본격적인 문학세계로 비약하게 된다. 이를테면「할머니의 죽음」(1923),「지새는 안개」(1923),「운수좋은
제1장 한국 근대문학의 성립
1. 국어국문운동과 근대문학의 성립
(1) 한국 사회의 근대적 변혁
- 개화계몽 시대의 국어국문운동은 이 같은 민족의 주체적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촉발된 일종의 문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 국어국문운동은 개화계몽운동의 중심에
이상 문학의 원점이 공포의 기록이었음을 증명하는 일은 처녀작이자 장편인 <12월 12일>에서 잘 확인된다. 이 장편의 서문(1)을 보면, 자살이 몇 번씩 찾아왔을 때의 이상의 나이는 만20세였고, 1930년 4월이며, 직함은 총독부 기사였고, 서소문에 있는 전매청 건물 공사장에서 근무중이었다. 자살충동이 20
11.13. 내면의식을 추구한 시
11.13.1. 시문학파가 개척한 길
‘시문학파’가 형성된 1930년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가 이른바 문화통치에서 군국주의적 무단통치로 강화되기 시작한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국내에서는 문화운동만이 가능했는데 1930년을 전후하여 전개된 순수문학운동도 이
모더니즘 또한 이런 일반적인 문예사조로서 모더니즘 특징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상(李箱), 박태원, 김승옥 등의 한국 모더니즘 작가들의 작품만 보더라도 삶의 무의미나 공허감에 빠진 허무주의자로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사물화 된 인간, 반사회적 인간으로서 문명을 비판하는 등 발전의 비극
2. 전기적 특징
1) 집안의 과도한 기대
이상은 아버지 김연창의 아들이면서도 백부 슬하에 자식이 없었기에 3살때 젖이 떨어지자마자 백부집에 양자로 들어간다. 실제로 족보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명복상 백부 김연필의 아들이고, 강릉 김씨의 장손이며 또한 할아버지 김병복의 장손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