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오늘날 따져 보아도 한글이라는 이름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고, 위대하고, 바른 글자`를 가리키는데 알맞다.
세종 임금이 훈민정음이라는 글자와 함께 한글을 만든 목적과 동기, 글자의 수효(數爻), 그 체계와 원리 그리고 용법(用法) 등을 자세히 밝혀 놓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발간하였다.
창제에 대한 기술
세종 25년(1443) 12월 30일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이때 훈민정음의 제자가 완성됨을 알 수 있다.
이 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모방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에 관한 것을 모두 쓸
훈민정음 반포가 9월 상순의 일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선어학회에서는 반포한 날을 음력 9월 10일로 잡고 이 날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그러면 본문으로 들어가서 한글(훈민정음)의 창제에 대해 알아보고 한글의 명칭 변천과 한글의 우수성에 대
3) 몽고글자
- 유희<언문지(諺文誌)>
4) 그 밖의 견해
- 서장 글자, 발리(pali) 글자, 우리나라의 옛 글자 등.
5) 해례
-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해례(解例)가 붙은 훈민정음 반포 시기의 원본 ‘훈민정음’이 나타남. => 정음 28자의 창제원리를 모두 설명.
(2)훈민정음 본문의 글자 쓰기에 대한 풀이
1) 해
그름을 파악한 후 그것을 익혀 사용한다면 보다 바른 표기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사용하는 국어는 訓民正音 창제 이전까지는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는 借字 표기에 의지하여 문자 생활을 하였다. 15 세기에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우리는 비로소 음운 문자에 의한 문자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③음운론적 관점에서의 당시 훈민정음창제 정황
문자는 필요에 따라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것인데, 음운론적 연구의 결과로 이룩되는 것이다. 그 당시 한자가 여전히 중세동아의 국제적 문자였으나 당시 문자의 발전은 표음화 경향이었다. (고려와의 관계로 보아 매우 밀접하였던 외국문자는 원의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현재 ‘한글’로 통칭하고 있는, 세종 즉위 25년(1443년)에 만든 우리 고유의 글자 28자의 명칭이 그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새 문자에 대해 집현전의 학사들이 각 글자의 소리와 창제 취지, 경과 등을 해설하여 기록한 책의
훈민정음에 언급되어 있듯이 한글의 창제의 중요한 목적은 분명 기층의 기득권에게 있지 않고 높은 문맹률에 힘들어했던 일반 민중 층에게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시의 지배층은 선진 정보의 습득과 보다 높은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한 도구로서 문자(漢字)의 습득이 필수적인데 반하여, 일반
훈민정음을 선택하게 되었음을 간접적으로 밝힌 것이다.
퇴계의 이러한 태도는 바로 율곡으로 이어졌고, 드디어는 송강과 같은 대시인이 출현하여 한국 언어 예술은 그 분령을 거의 회복하게 되었다.
퇴계 전후에도 우리 시가에 있어서 노랫말과 기록 수단의 일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인물들이 많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익히기에 매우 어려운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는 한글에서 ‘ㅇ’ 이 초성에 쓰이느냐 종성에 쓰이느냐에 따라 음가가 달라진다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몽골 문자는 몽골에서 창제된 문자가 아니라 13세기경 위구르문자를 모체로 하여 형성된 문자이며, 티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