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이지만 문학의 도덕적 가치를 학습하는 차원을 넘지 못했다. 그 뒤로 런던 및 다른 지방 대학에서도 유사한 과목이 개설되었으나, 교과목의 내용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영문학이 아니라, 문학과 더불어 언어와 문헌학(문헌학, philology)에서 역사, 지리. 경제 등 잡다한 내용의 것이었다. 옥스브리지(옥
시 애버딘에서 자라났다. 바이런의 집안은 영국에서도 가장 유서 깊은 가문의 하나로서 11세기경「브룬」이라고 불리던 고대 노르만의 호족의 한 사람이 정복왕 윌리엄 1세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 오면서 시작되었다. 에드워드3세때 존 바이런이 카레의 포위전에서 세운 공훈에 의해서 서어(준 남자)의
시 애버딘에서 자라났다. 바이런의 집안은 영국에서도 가장 유서 깊은 가문의 하나로서 11세기경「브룬」이라고 불리던 고대 노르만의 호족의 한 사람이 정복왕 윌리엄 1세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 오면서 시작되었다. 에드워드3세때 존 바이런이 카레의 포위전에서 세운 공훈에 의해서 서어(준 남자)의
시골 생활의 이상화, 상상력의 개화, 감상적 우울, 민요의 수집과 모방, 중세와 고대문학에 대한 흥미 등을 들 수 있다.
워즈워스는 『서정민요집』의 재판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시의 목적을 '평범한 인간의 생활을 평범한 언어로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전원의 단순한 이야기, 시골의 소박한 인간들
시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정당한 평가는 영미의 경우에도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시도되었다. 이는 존 단을 위시한 17세기의 형이상학파 시인을 새롭게 재평가한 엘리어트에 의하여 제기되었는데, 엘리어트는 존슨의 문학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의 전체에 지적인 몰두”(148)가 필요하
영미계 주지주의를 소제목으로 대립시키고 있어, 그 혼란은 정리되지 않는다.
김윤식 교수는 모더니즘이라는 개념 아래 이미지즘, 주지주의를 하위 개념으로 두고 있다. 그리고 영미문학에서 20세기 문예사조가 이미지즘으로 시작하여, 1920년 이후에 주지주의가 이어진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그는
시의 유파를 가리키는 말이다. 1930년대 모더니즘시인들의 시에는 두 가지 기본적인 흐름이 있다. 이것은 서구 모더니즘이 지닌 두 흐름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하나는 정지용이나 김기림, 김광균 등으로 대표되는 영미 주지주의와 이미지즘을 지향하는 계열이라면, 다른 하나는 이상과 3·4문학으로 대표
것을 강조했던 급진적인 시의 유파를 가리키는 말이다. 1930년대 모더니즘시인들의 시에는 두 가지 기본적인 흐름이 있다. 이것은 서구 모더니즘이 지닌 두 흐름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하나는 정지용이나 김기림, 김광균 등으로 대표되는 영미 주지주의와 이미지즘을 지향하는 계열이라면, 다른
문학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으며, 문학작품의 질이 감동으로 요약될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문학교육의 총체적 성찰이 필요한 까닭은 이런 데서도 재삼 확인된다.
세계화가 강조되고, 문화의 세계적 보편성이 강조되는 경향이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민족적 정체성이 중요
시작했으며, 따라서 이 문제는 프랑스 사학계에서도 오랫동안 소홀히 취급당한 주제 중의 하나였다.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게 해준다.
1. 영미문학권의 쇼아에 대한 본격적 논의에 비해 프랑스 쪽의 접근은 왜 그다지 빈약한가? 이 현상은 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