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배후에는 각각 영국․미국과 프랑스․독일이 있으며, 1905년까지 제국주의의 국제 대립의 중심은 동아시아에서의 러시아와 영국 간의 항쟁에 있었다. 그러나 러ㆍ일 전쟁 후 러시아는 후퇴하고, 다시 그 진로를 발칸․중근동으로 향했기 때문에, 이후 제1차세계대전 발발까지 제국주의
전쟁에서 희생 되었던 것보다 두 배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었다.
그러면 과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전쟁이 일어났을까?
2) 전쟁 시대상황, 배경
유럽의 국제적인 긴장을 격화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은 비스마르크 실각후의 독일의 적극적인 세계정책의 추진과 이를 위한 군비확장이었
[1]제1차세계대전 전사
1. 제1차 모로코 위기와 알헤시라스 회의
1) 모로코 문제
; 1880년 열강에게 개방된 모로코는 19세기말 까지 프랑스의 세력범위에 있음이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독일은 모로코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는 없었고, 다른 지역에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
전쟁으로 현실에 발현된다. 여기서의 공간은 우리 눈에 보이는 지리적 공간의 특징은 물론 인공적 특징 즉, 주변국가와 국제정치적 역학 구도에 따른 현상 모두를 가진 공간을 말한다. 특히 이러한 1-2차적 공간특성이 중요하기 인식되는 정치적 공간은 직간접적으로 각 게이머들의 투쟁의 장이 된다.
차세계대전 중 총 사망자수는 어림잡아 6천 2백만 명으로 그 중에 민간인이 3천 7백만, 군인이 2천 5백만으로 민간인이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사망자 피해 뿐 아니라 전쟁 참가국의 도시들의 대부분이 폐허가 되는 등 그 실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독일은 특히 인종청소라는 명목아래 많은 유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독재자들이 야욕을 드러내면서 결국엔 세계 제2차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파국을 맞이하였다.
제2차세계대전이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입과 이에 대한 영국․프랑스의 대독선전에서부터, 1941년의 독일․소련 개전,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발발을 거쳐 1945년 8
독일의 분단은 우리의 분단과는 다르다. 즉 독일의 분단은 전쟁도발에 대한 국제적 징계로서 2차세계대전 전승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라는 4대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고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가 점령하던 지역은 서독이 소련이 점령하던 지역은 동독이 된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형태가 양극
미국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3. 1950년대 이후
1950년대에 들어서 유럽통합은 좀 더 본격적인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독일의 견제에 외교력을 집중해왔던 프랑스는 독일의 철강?석탄 공업을 강력하게 통합함으로써 전쟁위험의 억제를 시도하였다. 1950년 5월 프랑스 외상 Robert Schuman은
것을 모색했다. 즉 대공황의 해결책으로 등장한 부작용의 하나인 전체주의로 전 세계는 대전을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전쟁 이전의 영 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한 유럽 주도의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이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과 소련 주도 의 새로운 세계 질서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소련의 對韓 정책
1. 카이로 회담
카이로 회담은 1943년 11월 22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연합국 대일항전과 전후 처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검토한 최초의 회담으로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 영국총리 처칠, 중국총통 장제스가 참석하여 대(對)일본전쟁 수행 협력과 전후의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