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탈리아, 일본과 같이 국내시장이 좁고 민주주의의 기틀이 약했던 나라들은 전체주의를 내세워 대외적인 침략정책을 통해 나라의 위기를 극복할 것을 모색했다. 즉 대공황의 해결책으로 등장한 부작용의 하나인 전체주의로 전 세계는 대전을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전쟁 이전의 영 국과
전쟁도 불사한다는 강경 태도를 취하였으므로 독일의 외교공세는 두 번 다 실패하였다. 한편 1903년 이래, 독일은 투르크에서 바그다드 철도의 건설을 추진하였고, 또 투르크 육군의 근대화를 지도하여 이 나라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여 갔다. 그리하여 국제적으로 고립함에 따라 독일의 대외 진출의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로 나타났다. 특징으로는 집단, 사회, 민족주의를 강하게 주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훗날 건축에도 영향을 미쳐 근대 건축을 비판하는 모티브를 제공한다.
● 근대 운동에 대한전체주의적 비평
독일
- 1920년대부터 시작된 새로운 건축
독일의 항복으로 종식될 당시까지 세계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전후 유럽에는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비롯하여 일련의 전체주의 정치사상과 운동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그 중 몇 몇 국가에서는 그 전체주의적 정치사상을 표방하는 정치세력
파시즘이라고 정의한다. 전쟁 이후로는 전체주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II. 파시즘의 배경
18세기 말부터 누적되어온 사회적 불안과 제1차 세계대전 후 만성적 공황 및 전승국·패전국 등의 정치·사회적 불안이 각종 혁명적 기운을 초래하였다. 이에 대한 극도의 반동적 경향에서 나타난 것이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