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트 2세의 군대에 옮겨 프라하 전투에 참전하였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이때 「경이로운 과학의 기본원리들」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경이로운 과학의 기본원리들」이란 제반 과학에로 통일시킬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의 발견을 의미하는 것이다. 1619년부터 1628년까지는 그의 여행기간이
1619년부터 9년간 북·서 유럽을 여행하면서 철학자로서 활동하였다. 1662년에 파리에 머물면서 많은 철학자들과 알고 지냈다. 특히 교부 마랭 메르센은 매우 박식한 사람으로, 데카르트가 더욱 광대한 지적 세계와 접촉하도록 만든 주요 인물이었다.
데카르트는 1628년 네덜란드로 건너갔다. 프로테스탄
Ⅰ. 저자소개
■ 홍자성
중국 명나라 신종 때인 만력(萬曆) 시기(1573-1619)의 선비이다. 본명은 응명이고, 자(字)는 자성(自誠)이며 호는 환초(還初)이다. 평생 불우한 선비였으나 『채근담』한 권으로 필명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사상 근저를 유교에 두고 있으나 노장의 도교
1619년 명의 거듭된 요청에 파병한 강홍립의 조선군 심하 전투에서 패전
1621년 명이 다시 원군 요구
1620년 후금과의 관계를 원활히 할 것 지시
1623년 인조반정 일어나 광해군 폐위, 인조즉위
< 외교적 업적 >
- 명청 교체기 후금: 명과의 대결을 위해 조선과의 외교, 군사 관례를 정리하려 함
2광해군의 정치
⑴일본과의 조약
광해군은 1619년 일본과 일본송사약조를 체결하고 임진왜란 후 중단되었던 외교를 재개하고 1617년 오윤겸등을 화답사로 일본에 파견하였다. 광해군이 나라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고 우리나라에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겨준 왜와 이렇게 빨리 다시 외교를 하게되었던
1619) 사이에 이르러 전기는 다시 활발한 시기를 맞게 되었다. 음악적으로 말해 원나라 때의 잡극은 북곡에 속하고 전기는 남곡에 속하는데, 명초에는 북곡이 우세하다가 성화 이후부터는 전기 작가가 많이 배출되어 작품창작이 활발해짐으로 남곡이 차차 우세하였으나, 가정을 전후하여 위양보(魏良甫)
안용복이 숙종 19년(1619년) 울릉도 해역 에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대마도 출신 어부들에게 납치되어 가서 울릉도 해역이 조선 관할임을 주장한 데에서 비롯된다. 이를 계기로 대마도주는 조선 조정에 어부들의 조업을 금지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이에 조정은 울릉도의 일본 명칭인 다케시마를 울릉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1619년 페르디난트 2세가 황제가 되자 보헤미아인들은 팔츠선제후(選帝侯) 프리드리히 5세를 국왕으로 받들고 이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1620년 바이서베르크 싸움에서 패배하여 프리드리히 5세는 네덜란드로 망명하고 보헤미아의 그리스도교도들은 탄압을 받기 시작하였다.
1619~1683)는 프랑스를 무역대국으로 길러 무역 차액에 의해 국부를 증대시키고자 일련의 정책들을 펼쳐 나갔다. 이외에도 간접세의 확충, 국가 회계제의 확립, 국왕 직영지 재조직, 금융업계에 대한 사정등 새로운 재원 개발과 군주에게로 흘러 들어가야 할 부의 누수 방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콜베
1619~1683)가 한 프랑스 기업가들 모임에서 정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참석자중 프랑스의 중농주의자가 처음으로 “우리를 자유 방임으로 내버려 두라(Laissez-nous faire)”라고 대답함으로써 제창되었고, 그들의 주장인 Laissez-faire가 자유방임주의의 표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