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던 노래로서 중국 한시에 대한 그 때의 우리 나라 가요를 일컫는다. 또한 현전하는 신라노래들은 모두 사뇌가 중심이기 때문에 향가를 곧 사뇌가(詞腦歌)라고도 일컫는다. 사뇌가라는 말은 특히 10구체의 향가를 가리키는 말로 향가라는 한자어 명칭이 생기기 전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배경설화
<삼국유사> 권2 <효소왕대 죽지랑조(孝昭王代竹旨郞條)>
삼국유사에는 이 노래를 짓게 된 동기를 설명해 주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죽지랑의 무리에 득오곡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매일 죽지랑을 모시다가 갑자기 열흘 가까이 나오지 않으므로 죽지랑이 그의 어미를 불러 연유를
향가의 창작 시기에 관해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신라 진평왕 21년(599)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서동요(薯童謠)를 이른 시기의 향가작품으로 보고, 헌강왕 5년(879)의 <처용가>에 이르는 약 280여 년 동안에 생성된 것으로 본다. 고려 광종 때 균여 대사가 지은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11수는 광
향가의 창작 시기에 관해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신라 진평왕 21년(599)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서동요(薯童謠)》에서 헌강왕 5년(879)의《처용가》에 이르는 약 280여 년 동안에 생성된 것이며, 고려 광종 때 균여 대사가 지은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11수는 광종 24년(973) 그가 죽은 해 이전에
도솔가뿐만 아니라 散花歌도 가창되었음이 일연(一然)의 기록을 통해서 입증되고 있고, 또 이 문다부재(文多不載)라 한 산화가(散花歌)는 이름이 전해오지 않는 타(他)의 인도승(引導僧) 혹은 어느 범패사에 의해서 창영되었음이 이미 밝혀진 바 있다. 문제는 산화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도솔가는 과연
노래를 읊어 현실에서 죽은 누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월명사는 죽음에 세계를 바로 이 노래를 통하여 자기 곁에다 바짝 가까이 다가오게 하여 삶과 죽음의 인간관계를 향가의 시적 표현과 상징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4) 작품해설
<제망매가>는 향가의 가장 성숙된 형식인 10구체의 대표적 작
노래를 일반적으로 고려가요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그 뜻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그 범주 역시 넓기 때문에 이들 시가 작품들에 대한 개념 규정은 연구 초기부터 지금까지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고려가요가 넓게는 고려시대 시가를 뜻한다고 하면 신라의 향가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균여의 향
노래를 지어 바치니 왕이 기꺼이 여겨 왕사(王師)에 봉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다고 한다. 이 때 그가 지은 향가 “안민가”는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각각 자기 본분을 지키면 나라가 태평하리라는 소박한 내용으로, 유교 사상이 짙은 노래이다.
향가를 지은 신라 사람들은 당시의 지식층에 속하는 사
처용가는 무가로서의 요건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가라는 점에서 명쾌한 해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처용설화와 처용가의 여러 관점을 살펴봄과 동시에 각 등장인물의 연구와 그밖의 다양한 연구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가사가 전해지지 않고 있는 그 밖의 향가 작품들을
향가란 과거 신라인들이 한자의 음이나 뜻을 빌린 향찰이라는 표기체계로 적은 우리나라 최초의 정형시가를 말한다.
이러한 향가는 향찰 문자로 기록된 것이라는 점에서 중국 한시에 대한 대타적양식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그것은 특정 갈래의 명칭이아니라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포괄하는 우리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