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지: 일본 오사카
출생-사망: 1899년 6월 11일 ~ 1972년 4월 16일(자살)
학력: 도쿄제국대학교 영문학 학사
수상: 1968년 노벨문학상
경력:
1924 동인지 문예시대 창간
1926 반 자전소설 ‘이즈의 무희’ 등으로 작가적 지위 확립
1934 무용가 최승희의 일본 데뷔 무용 발표회를 보고 장편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여 일본 도쿄 메이지학원 중학부를 졸업, 가와바타 미술학 교를 중퇴하였다.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를 발간하는 한편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귀국하였으나, 출판법 위반 혐의로 일제에 체포, 구금되어 4 개월 간 투옥되었다.
출옥
문학의 동반자가 되었으며, 둘째로 일본의 신감각파 및 심리분석 소설의 소개와 학습에 열중하였다.
유납구는 일본의 신감각파 작가인 요코미쓰 도시가즈(橫光利一)×가따오카 데뻬이(片岡鐵兵)×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 등의 작품을 선택하여 <<색정문화 色情文化>>라는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하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학원 중학부에 입학했으나 동경학원 폐쇄로 다시 메이지학원에 편입하였다. 이때 주요한과의 경쟁의식 속에서 많은 독서를 통해 문학에 뜻을 두기 시작하였다. 명치학원을 졸업한 뒤 그림에 뜻을 두어 가와바타화학교에 들어갔으나 중퇴했다. 이러한 도중에 부친상을 당해 귀국
1. 작가 : 김동인(金東仁)
본관 전주. 호 금동(琴童)․금동인(琴童人)․춘사(春士). 창씨명(創氏名) 곤토 후미히토[金東文仁]. 평안남도 평양 출생. 일본 도쿄[東京]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졸업, 가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學校]를 중퇴하였다.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創造)》를
1862년 쓰와노(津和野)에서 출생.
본명은 린타로(林太郞), 할머니와 아버지의 훈육으로 독서에 몰두.
1872년 친척인 니시 아마네(西周)의 권유로 도쿄로 올라와 독일어를 배움.
도쿄대학 의학부에 하여 1879년 19세에 최연소로 졸업.
육군 군의관으로 채용되어 1884년 육군성(陸軍省)의 명령으로 독일
일본 최고의 지성’ ‘일본 최고의 천재 작가’ ‘정교한 문체를 구사한 당대 최고의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쫓아다니는 작가는 그러나 35세의 젊은 나이에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자살하여 당시 문단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작가의 죽음
타이쇼 말부터 쇼와 초기에 걸쳐 두 명의 문학자가 잇
『창조』
1919 ~ 1921
탄생
김동인은 일본 유학에서 귀국하기 직전 주요한, 김환, 전영택 등과 함께 『창조』를 창간함.
최초의 문예동인지
주요한과 논의 후, 김동인의 재력으로 창간.
폐간
경비를 지원하던 김동인과 사무를 보던 백악의 염증으로 폐간함.
의의
문학의 근대적 제도로서의 역
▣ 서 론
지난 50년 간, 짧게 잡아 70년대 이후 약 30년 간, 우리 사회가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 취해온 태도는 이중성과 위선 그 자체였다. 한쪽으로는 일본문화를 굳게 빗장을 걸어 잠구어 놓고, 다른 한쪽으로는 일본문화의 유입을 허용하거나 그 유입의 현실을 모르는 척, 못 본 척 해온 것이다.
1. 일본 대중문화의 국내외 현황
(1) 세계속의 일본 대중문화 - 문화와 자본의 국경을 철폐하다
해외에서 가장 각광받는 일본의 대중문화는 만화영화 즉, 애니메이션이다. 약 2조 8천억 원의 규모를 가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65%에 이르고 있다. 현재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