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틴 루터의 삶
루터는 독일의 종교개혁자로 농부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1501년 에르프르트대학 문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505년 부친의 요청으로 에르푸르트 법과대학에 다시 입학하였고, 입학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죽음에 대한
해마다 우리는 종교개혁일을 맞이하고 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부르짖던 개혁의 외침이 오늘날 특히 한국교회에 절실히 요청된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개혁의 진정한 의미를 재음미 해보고 종교개혁 당시 그들이 주장하는(비록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던
뮌쳐 등) 외에 종교개혁 운동 속에 독일 중 북부의 루터 중심의 종교개혁 운동과 독일 남부(슈트라스부르크)와 스위스(제네바와 취리히 등) 중심의 종교개혁 운동이 있었다. 독일 중 북부의 루터 중심으로 전개된 종교개혁 운동은 오늘날 ‘루터교회’ 전통(루터, 멜랑히톤,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
Ⅰ. 서 론
종교개혁은 로마 카톨릭의 무지와 미신으로 오염된 하나님의 교회를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개혁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은 점점 확대되어 그 움직임이 유럽 곳곳에서 나타났다. 그중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성경의 내용에 근거하여 스스로의 판단에
서론
종교개혁의 연대가 16세기라 하더라도 교회 개혁의 필요성을 감지했던 것은 전기 중세 말부터이다. 15세기 말 수많은 신도들은, 성지자건 평신도건 간에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공의회를 통한 개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브 콩가르는 “중세의 개혁들을 “교리,성례,계급조직 등의
1. 마틴 루터의 생애
루터는 엄격한 부모에 의해 가톨릭신앙을 배우고, 마크데부르크와 아이제나흐에서 학교교육을 받았고 1505년 에르푸르트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법학부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 해 여행 중 갑작스런 벼락에 놀라, 죽음의 공포를 느껴 수도사가 될 것을 맹세하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1. 서론
16C 종교개혁의 핵심인물인 마틴 루터는 교회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유럽에 있어서 전환점을 가져다 준 사람이다. 그는 어떤 이들에게는 ‘이단의 괴수’로서 격렬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어떤 이들에게는 ‘신앙의 영웅’으로 열렬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상반된 루터의 모습을 ca
시각
2001년이었다. ‘역사철학’이라는 수업 시간이었는데, 한국에서 있었던 정치 참여의 시도들과 그 지향성에 대한 조별 발표를 하게 되었다. 들뢰즈를 가지고서 설명하던 한 사범대 학생과, 법적인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던 한 법대생, 그리고 나와 내 친구가 같은 조를 이루어서 논의를 했지만,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