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삼국사기지리지의 지명 사례
삼국사기 지리지의 지명은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개명한 것으로 신라, 백제, 고구려의 세 나라 별로 분류되어 있다. 이 지명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한자음으로 표기된 토착어의 고유지명을 그 음이나 뜻에 대응하는 한자로 대치하여 개명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1. 서론
인류가 지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 확실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그 시기를 추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단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사회적 기능으로 볼 때, 인명과 가축명, 지명이나 자연물 등에 대한 호칭어의 사용은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는데 절대적
2. 전설의 분류
1)지명 전설
2)광포전설 - ①장자못 전설 ②아기장수 전설 ③달래고개 전설
3)이인, 고승 전설 4)효자, 열녀 전설 5)원혼 전설
3. 지명 전설의 정의
지명전설은 마을의 이름이 생기게 된 유래를 설명하는 유형이다. 마을의 자연적 특성 이나 인공물의 존재 또는 역사적 유
지명을 볼 때 중요한 것은 지명의 이러한 복합적 성격이 무엇보다도 언어를 통해 드러난다는 점이다. 즉 지명은 자연스러운 언어의 변화와 함께 변화할 뿐 아니라, 사고를 반영하는 언어 일반의 특성으로 인해 그 지명과 관련된 이들의 의식 변화에 따라 언어적 변화의 과정을 밟는다. 따라서 이러한 지
자연 및 인문경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선사시대, 특히 청동기시대부터 이미 인천은 한반도 서해안 지역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삼국시대 이전의 인천의 지명은 알려져 있지 않고, 삼국시대부터 걸쳐 여러 번에 걸쳐 지명의 변천이 이루어졌다.
삼국시대에 있어 인천의 백제 때의 지명은 미추
세청리(世淸里)의 지명은 세청동(世淸洞)마을의 지명을 따서 이름하였다. 세청리는 선하동마을, 세청동마을, 율촌마을 등 3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선하동마을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 주위가 바다와 같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마을 앞에 섬뫼(島山)가 있으며 남쪽에 개선재가 있으므로 마을
세청리(世淸里)의 지명은 세청동(世淸洞)마을의 지명을 따서 이름하였다. 세청리는 선하동마을, 세청동마을, 율촌마을 등 3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세청동마을은 원래 세청개라 불렀으며 선하동과 합한후에는 원세청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명은 물이 귀한 곳인데 맑은 물이 나온다고 하여
풍암리(風巖里)의 지명은 풍류재(風流峙)의 풍(風)자와 구암리(龜巖里)의 암(巖)자를 각각 취하여 풍암리라 하였다. 풍암리는 풍암마을과 입교마을등 2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입교(笠橋)마을의 지명은 원래마을앞 지석천변에 있는 다리의 이름을 따서 갓다리라 불렀는데 이를 한자화하여 갓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