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백제를 세운 비류(沸流)가 고구려로부터 남하하여 미추홀에 나라를 세우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매소홀, 소성현, 경원군, 인주, 경원부 등의 이름을 거쳐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에 비로소 현재의 이름인 '인천'으로 바뀌게 되었다.
국토 전체에서 보는 인천의 위치는 한반도의 한 가운
2.2 초기 백제시대 미추홀과 인천인천지역이 역사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1세기 무렵 미추홀과 관련해서이다. 비류의 근거지로 알려진 미추홀은 비류집단이 남하하여 정착한 도읍으로, 온조집단이 정착한 위례성의 위치와 함께 초기 백제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미추홀의 정확한 위치
1. 인천 차이나타운 - 역사와 현재인천 차이나타운은 1884년 4월 청국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체결이 된 후로 화교들이 몰려와 생성 되었다. 북성동, 선린동 일대의 5천 평에 청국의 영사와 학교가 설치되고, 중국의 산동반도와 정기적으로 배가 운영되면서 화교의 숫자는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대부분
인천항이 기여하기를 바라며 그에 대한 방안 제시에 목적을 두고 있다. 그를 위해 인천항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조사함으로써 향후 인천의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Ⅱ. 개항 전 ▪ 후의 인천항의 모습
1 . 개항 전 인천의 모습과 인천항의 역활
1) 인천의
현재 목포, 군산과 같은 도시들은 지금 지정학적 중요성이 배제되고 다양한 정치사회적인 이유로 도시의 발전이 더디게 되었지만 인천은 여전히 수도 서울의 길목을 지키는 항구로써 지정학적 중요성은 미래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위에서 언급한 지난 100여 년간 인천의 역사적인 사건을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