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 서양 중세의 Schola학문과 문예부흥기의 서양과학시기에 관한 서양문헌을 중국어로 번안한 것이며, 중국예수회가 해산되는 1759년까지 저술된 한역서학서가 약 550종의 다수를 이루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를「한문서학서(漢文西學書)」나「야소회한문저술서(耶蘇會漢文著述
한역서학서를 집필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신학과는 다른 점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마테오 리치는 종교적 성격이 농후하다 비판받았던 공자묘 참배나 조상제사에 대해 우상숭배와 관련되지 않음을 주장한다. 이유인 즉슨, 중국인들은 공자나 망자를 신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이들에
한역서학서>로 명나라 말기~청나라 초기에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에 천주교와 서학을 전할 목적으로 쓰여진 책으로 종교, 윤리, 지리, 천문, 과학, 역사, 기술 등의 지식이 총망라되어 있다. 1603년 이광정이 사행원으로 북경에 갔다가 마테오 리치의 세계 지도를 조선에 들여왔으며, 이벽, 이승훈, 권일신
한역서학서를 통해서 유입된 서양의 과학적 성과물들이었다. 특히 서양 역법을 도입하려는 조선 정부의 끈질긴 노력과 맞물리면서 서양의 자연 과학적 성과는 조선 후기의 학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흡수되었다. 서양 역법의 수용으로 인해 서양 과학의 우수성은 이미 국가적인 차원에서 인정받은 셈이
한역서학서’를 통해서 조선의 지식인 학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특히 개혁을 추구하고 있었던 학자들에게 ‘서학’ 혹은 ‘천주학’ 등으로 소개되면서 환영받게 되었다. 청나라와 관계로 인해 일 년에도 수차례씩이나 청을 왕래하였던 학식 있던 사절단들은 자연스럽게 서양의 선교사들을 접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