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통치제도는 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정비되다가 15세기에 들어와 그 틀이 잡히게 되었다. 즉 고려의 다원적인 도제(道制)가 일원적인 8도체제로 개편되고 신분적 ․ 계층적인 군현 구획을 실질적인 행정구역으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속현(屬縣)과 향 ․ 소 ․ 부곡 ․ 처 ․
춘향전에서 묘사되는 전라도 암행어사로 부임하는 이몽룡, 박문수전에서 묘사되는 암행어사 박문수 등은 효과적인 임무수행을 위해 폐포파립(弊袍破笠)의 복장으로 자신의 신분을 숨긴다. 이런 과정에서 모든 이들은 이런 암행어사에 속고 이어 천둥을 울리는 듯한 출도로 못된 지방 수령을 징치하며
임진왜란을 거치고 이어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사회는 반상의 신분질서가 크게 흔들리는 사회변혁을 거치기 시작했다.
양란의 결과, 농경지가 황폐화되었고 조정에서는 묵은 밭의 개간을 적극 장려했다. 이를 기회로 지배층의 대토지 소유가 가능했다. 따라서 대다수의 농민은 토지를
지방에는 5통마다 이정(里正) 이정(里正) : 오가통법(五家統法)에서의 이(里)의 대표. 서울[京]의 행정구역상의 이(里)는 고대부터 있었으나, 지방행정상의 단위 명칭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기부터였다. 이정(里正)·이장(里長)의 명칭도 이때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조선왕조 일대에 존속한다.
행정의 책임자로서 도내 일체의 통치행정을 전적으로 위임받았던 막중한 직임이었다, 따라서 관찰사의 지방통치기능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조선 정부가 어떻게 지방인민을 지배하고 있었는가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를 가질 수가 없다. 이에 조선전기 관찰사제도를 고찰하여 조선후기지방통치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