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패(號牌) 호패(號牌) : 조선 때, 열여섯 살 이상의 남자가 차던 길쭉한 패. 한 면에 성명과 난 해의 간지(干支)를 쓰고 뒷면에 관아의 낙인(烙印)을 찍었음.
<동아 새 국어사전 이기문 동아출판사>
제도호패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보이는 때 태조 13권 7년 1월 16일 (갑자) 001 / 도평의사사에서 호패법
호적(戶籍)제도란 무엇인가?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보이는 호적
우선 호패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상위제도라 말할 수 있는 호적제도를 보고자 한다. 호적제도를 명시하는 많은 자료 중에 경국대전의 내용을 선택한 이유는 대전(大典)자체가 가지는 의의가 조선시대 전반적인 사회, 문화, 법률 등을
Ⅰ. 조선시대(조선)의 공예
조선시대의 공예는 간결·대담·소박한 특색을 보이면서 보다 대중화되는 경향을 나타냈다. 그러나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도자기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앞시대에 비해 낙후된 양상을 보였다. 이 시대 공예의 주류를 이루었던 도자기는 15, 16세기에는 분청사기(粉靑沙器)가
호패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폐지되곤 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이후 임진왜란 때까지 호패제는 실시되지 못하였다.
호패제 시행의 필요성은 壬亂 직후부터 다시 활발하게 제기되었다. 임란으로 인한 폐해로 국가경제는 파탄지경이 되고 양안과 호적마저 대부분 소실되었다. 또한 전란과 부
제도·풍속·언어 등 모든 면에 걸쳐 고려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다 동년 12월에 국호를 정식으로 조선으로 정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의 정치조직은 고려말기의 것을 토대로 하여 개선·발전시킨 전체적 지배조직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조선시대가 정치·경제·사회 등의 제 영역에서 고려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