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 유교를 한제국 공허(公許)의 학문으로 채용하였다. 이것으로 유교는 강대한 전제 권력에 의해서 전면적으로 지지를 얻게 되고 관료와 그 후보자적 존재에게 있어서는 필수적인 교양이 되었다. 따라서 그 이전의 재야 여러 학문의 하나였던 때에 비해서 차차 그 사상적 내용의 긴장성을 잃어갔다.
유교적 덕목의 표방과 정치적 권력과의 충돌에서 빚어진 갈등이었으며, 이 시기에 성삼문, 이개 등의 시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죽음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절의의 주제가 강조되었다.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죽을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것인들
1.유교 정치 이념과 왕권
조선시대의 유교이념에 의하면 왕은 천명을 받은 초월적 존재이며 동시에 세속적 권력자이다. 천명을 받은 초월적 존재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늘로 대표되는 신성한 존재에 의해 선택되고, 그로 인해 신성한 존재와 배타적 교류관계를 갖는 초월자라는 의미이다.
이것
권력의 획득·유지를 둘러싼 항쟁 및 권력을 행사하는 활동, 또는 어떤 힘에 의하여 사람들의 의사나 행동을 움직이게 하는 것 등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입장을 대변한다. 그러나 정치 현실에 비록 그러한 힘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유교에서는 그것을 정치 해석의 중심으로
유교 이외의 어떤 종교도 유교 이데올로기에 감히 도전할 수 없었다. 조선왕조의 지배종교인 유교는 순수한 관념형태로서의 성리학적 가치체계를 통하여 사회체계를 재편성하는 조직적인 형이상학적 원리를 창출해 낸 것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계층으로 부상한 중소지주출신의 신진사대부들과 무사
유교․불교․도교가 병립하면서 서로 영향을 끼쳤으나, 현실적으로는 서로 경쟁하고 대립한 시기였기도 하다. 외래종교인 불교가 당대에 성행하였는데, 중화의식이 강한 중국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였는지, 그리고 국가 권력과 이 三敎의 부흥과 쇠퇴에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
권력-욕망-쾌락의 나선
몇백년 동안 가부장제 질서의 결집성 속에서 여성은 권력의 여러 장치 속에 둘러 싸이게 됨(금기)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참는 어머니를 선전하고 부추김으로써 욕망을 유인
권력은 허용과 금지를 통해 욕망을 산출하고 쾌락을 산출
포스트모더니즘 -유교적 질서에서 부각되
권력을 견제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자율능력도 증대되었다. 국가와 민간단체간의 교류와 협력에 의하여 외부변화에 대응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도 증진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능동성의 증대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 바로 시민사회의 각종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
I. 중국 시민형성의 정치 문화적 제한- 유교와 공산주의
우리가 시민사회 개념으로 중국을 접근할 때,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중국 사회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 유교와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이다. 오늘날의 중국은, 한(漢)나라 이래 황제 권력의 정당화 이데올로기로 봉사한 관학 유교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