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선의 출현과 천주교의 전래로 전국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게다가 서양과의 전쟁에서 중국의 잇따른 패배소식은 조선의 백성들이 불안에 떨기 충분한 사건들이었다. 또한 사상적으로도 주자학의 유일한 사상체계가 해체되고, 새로운 역사적 변동에 조응하는 사상적 다원화의 시대가 도래하는 시
이양선이 출몰하여 서양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866년에 흥선대원군이 서양의 통상요구를 거부하고 천주교인과 프랑스선교사 12명중 9명을 비롯하여 한국인천주교인만 무려 8000여 명이 학살당하는 병인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해 9월 프랑스군이 침공해오지만 조선군에게 패하고
이양선으로 인해 불안에 떨고 있었다. 위정자들이 유사시에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존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프 연합군이 청나라를 침입하여 승리하고 북경을 함락시킨 일이 일어남에 따라 민중의 위기의식은 높아져만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운 최제
이양선(異樣船)의 잦은 출몰과 그들의 통상 요구는 조선의 위정자들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다.
그 시기 조선의 경우를 보면, 안동김씨 세도정권 시기의 조선에 적극적으로 접근해 온 나라는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이었다. 영국은 1787년에 제주도와 울릉도 주변을, 1797년에 영흥만과 동래
동학농민운동의 사회사적 배경
1.수운 최제우의 동학 창도
(1)동학 창도의 배경
-1860 년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가 동학을 창도한 배경으로서 먼저 들어야 할 것은 서양세력과 서학(西學)의 조선 침투로 말미암아 조성된 민족적 위기의 상황이다.
19 세기에 들어오자 이양선(異樣船)이라고 불리
세력의 포위권내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이상한 모양의 배’(이양선)들이 조선의 해안에 출몰하여 주민의 신경을 흥분케 하는 한편 조총, 홍이포 등 무기와 담배, 감자, 아편 등 화물과 지구도, 망원경, 시계, 기타 과학 문물 및 한역 서양인 서적들이 중국 혹은 일본을 통하여 국내에 유입되었다.
이양선의 출현과 서양 국가들의 통상요구
① 서세동점(西勢東漸) - 아시아 국가의 느림보 발전 vs 서유럽 국가의 항해술 발달
② 제너럴셔먼호 사건,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③ 서구세력의 침입을 물리친 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움 (쇄국정책?)
⑶ 강화도 조약 (조-일 수호조규, 1876. 2.)
① 계
국외적 배경
- 청나라의 개화로 인하여 프랑스, 미국 등의 아시아권 진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서 조선 또한 대표적인 사례로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을 사건으로 하여 조선의 바다에 ‘이양선’이 출몰하여 무역을 위협적으로 제의하는 등의 정치적 상황을 보였다.
2) 국내적 배경
왔으며, 19세기 중엽 이후에는 조선에까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이양선이 자주 출몰)
미국의 셔먼호가 대동강을 오르내리며 침략을 도발한 이후, 프랑스의 천주교도 박해를 이유로 한 병인양요 등 수 차례의 외세의 침략을 받게 된다. 이들은 이러한 전쟁을 빌미로 통상을 요구했고, 그것이 쇄국
Ⅰ. 서론
박규수의 개국통상론에 잘 드러나듯이 초기 개화사상은 개항론의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19세기 중엽부터 조선해안에는 이양선이 자주 나타나 해안을 측량하는 등 활동을 벌여 조정을 긴장시켰다. 또한 영불연합군이 1857년에 광동, 1860년에 북경을 점령하는 등 청이 유린당하자 서양제국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