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박규수의 개국통상론에 잘 드러나듯이 초기 개화사상은 개항론의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19세기 중엽부터 조선해안에는 이양선이 자주 나타나 해안을 측량하는 등 활동을 벌여 조정을 긴장시켰다. 또한 영불연합군이 1857년에 광동, 1860년에 북경을 점령하는 등 청이 유린당하자 서양제국에 대
특수한 평등사상으로서의 ‘대동’의 이념에 입각하여 토지를 공유로 하고 남녀 균등히 할당하며 전체 잉여물자를 공유로 하여 노유고과를 부양하는 등 차별과 대립이 없는 세계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며, 거병 이후 군대 내에서 실행해 왔던 것을 사회 일반에게 적용하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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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으로는 19세기 중엽에 조선민족의 지식인들이 만든 새로운 사상들을 크게 나누어 보면 개화사상ㆍ동학사상ㆍ위정척사사상 등이었다. 본고에서는 그중 개화사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2. 본 론
1) 개화사상의 출현 배경
신미양요를 겪은 뒤인 1870년대 전반기 조선사회에는 개화사상이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농촌사회의 모순은 봉건적인 지주 전호제의 모순에 제국주의적 모순이 부가된 형태로 민란의 시대보다 더욱 격화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제국주의의 침탈에 따른 농촌사회 구성의 변화는 조선에서의 근대를 향한 변혁주체세력의 성격을 규정하게 되었다.
제국주의 침략
관한 책을 얻어 읽고 통상과 개화를 주장하였다.
고종과 그 측근의 개화정책은 당시 증국번, 이홍장등에 의해서 추진되었던 중국의 중체서용이나 양무운동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서 서양의 과학, 시술을 빌려 왕종국가를 부강하게 만들려는 자강정책이었고 전면 서양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