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군관계의 특질
3) 인민위원회와 인민군
4. 당과 산업부문, 노동계급
1) 직업동맹의 성격과 위치
2) 산업부문의 당
3) 경제전문가, 기술자, 노동자 출신의 정치적 진출
5. ‘유일관리제’의 실시
1) 공업관리체계의 중앙집권화과정
2) 유일관리제와 당의 행정대행
3) ‘증산경쟁운동’과 공장관리체계
6. 토
당군 관계의 실체와 공산당 북조선분국 집행위원회의 사정위원회가 아닌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강행에 의해 곧바로 실행된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의 ‘혁명’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사안이 너무나 쉽게 결정된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물론, 그 당시 다양한 종파가 있었던 북조선분
알 수 있는데 “조선공산주의자들이 항일무장투쟁에서 이룩한 영예로운 혁명전통의 직접적 계승자이다”라고 규정했는데, 여러 민족해방 투쟁의 전통에서 김일성의 빨치산투쟁과 직접 관련이 없는 투쟁 전통은 배제대고 빨치산 투쟁으로 일원화 된 결과이다.
2. 만주파의 당군 장악과 당군 일체화
당군관계
라. 당과 산업부문, 노동계급
마. 유일관리제 실시
바. 토지개혁과 당인민위원회농민위원회
Ⅱ. 평가 및 의견
1. 관심 포인트
2. 의문사항
3. 성과와 한계
4. 문제제기
Ⅰ. 주요내용
1. 해방과 인민위원회
가. 인민위원회와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
8.15 일제의 항복으로 초래된 조선 전 지역
당군 관계
1) 당내 군사적 비중 증대와 여러 군사적 구성요소
당 간부의 군대 동원과 당과 군대와의 관계 근접성을 꿰할 수 있다. 남조선의 빨치산부대는 당의 군대로서 이후 남북조선로동당의 합당은 북의 위로부터의 집권층 확보에 남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두는 남로당으로 인해 정체성 확보 받게
당군정 2곳 이상의 겸직 둘, 혈연(백두의 혈통과 만경대 혈통)세대연학연 등 관계 긴밀성, 셋, 70대 초중반의 높은 평균연령, 넷, 평균 30년 이상 장기간의 고위직 재입/경력 기간 (p. 203)
즉, 북한 권력엘리트 구조의 양재 속성은 직위 겸직 및 혈연, 학연, 지역연, 세대연 등 관계의 “중첩성”과 평균연령 7
당군관계
전쟁은 당을 군에 더욱 접근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만주파, 소련계의 견제를 받던 연안계는 1949년 국공내전에 참가하고 있던 조선인부대가 들어오며 군의 요직으로 대거 진출하였고, 남로계는 1948년 남조선 내전상태에서 유격전을 지휘하고 있었다. 남한의 유격부대는 정규군인 인민군으로
당군관계
전쟁발발을 전후하여 상당수의 당 간부가 군의 정치간부직에 취임하여 당을 군에 더욱 접근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당 내의 각 정파 역시 자체의 군사적 기반을 준비하면서 그 군사적 성격을 강하게 디고 있던 점에서, 북조선 측에서 보며 625 전쟁은 이상적으로 연안계의 협력 아래 만주파
예측한 그대로였고, 그는 즉시 당내 실권파와 문혁 5인 소조를 반당파, 반혁명파, 수정주의자로 몰아세웠다. 결국 나서경, 양상곤, 팽진, 육정일 등 당군의 원로들이 숙청당하고 문혁 5인 소조는 와해되었으며, 앞으로 문혁은 진백달, 강생, 강청, 장춘교 등의 ‘중앙 문혁 소조’가 주도하게 되었다.
당군제도의 개편작업이 개시되었다. 군내 정치사업에 대한 결정서가 채택되고, 조직적 조치를 당조직위원회에 위임한다고 하였다. 군내 간부들의 당 생활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으며 군대의 ‘이원제’를 채택했다. 군사 명령계통은 최고사령관-민족보위상-총참모장-각급지휘관으로 이어지고, 당 명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