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의 모든 일에 있어 그 일에 따라 각기 마땅하게 할 뿐이요, 현묘한 것에 마음을 두거나 기이한 것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격몽요결>을 통해 그는 사람이 사람 될 수 있음이 학문에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그는 이러한 학문이 대단하고 큰 것이 아니라 일용의 것, 실생활에서 합리적인 처사에 있
일용의 모든 일에 있어 그 일에 따라 각기 마땅하게 할 뿐이요, 현묘한 것에 마음을 두거나 기이한 것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격몽요결>을 통해 그는 사람이 사람 될 수 있음이 학문에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그는 이러한 학문이 대단하고 큰 것이 아니라 일용의 것, 실생활에서 합리적인 처사에 있
되었으며, 인물본위의 교육제도를 학벌ㆍ시험본위의 교육제도로 전환하였다.
신라 설총의 화왕계
비유와 풍자로서 신문왕을 훈계하는 우화적인 왕자지계로서 설총의 군왕교육사상이다. 왕자지계의 서로 이황의 ‘성학십도’, 이이의 ‘성학집요’, 권근의 ‘수창궁 재상서’ 등을 들 수 있다.
집요 등은 그의 대표적인 저작들이다. 그의 학통은 조헌, 김장생 등으로 이어져서 기호 학파를 형성하였다.
이황은 주자서절요, 성학십도 등을 지어, 주자의 이기 이원론을 더욱 발전시켜 주리 철학을 확립하였다. 그의 사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의 성리학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주리 철학
집요》,《사시찬요》등과 우리나라 농서인《본국경험방》이 있긴 했지만 그 책으로 농민들을 계몽하기에는 무리였다.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농업 방식도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농사직설》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한 책이었다. 《농사직설》은 무엇보다도 곡식 재배에 중점을 둔 농서였다.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