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였던 신흥사대부는 불교에 대항하는 개혁사상으로서 성리학을 수용하였다. 성리학은 당시 송에서 광범위하게 유행하였던 불교와 도교를 철학적으로 극복하고 성립한 새로운 유학이었다. 이기론(理氣論)은 성리학 전체의 기본이었고, 이에 바탕을 두고 인성론(人性論)과 수양론(修養論)이
정치 과정에서 고려 사회의 운용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하나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한다. 그렇게 사회 개혁에 매진하던 고려의 성리학계는 조선의 개국을 맞아 두 진영으로 양분된다. 새 왕조에 참여하여 유교적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참여파 학자들과 고려 왕조에의 절의를 강조
조선이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선비의 나라, 가부장적인 사회, 붕당정치, 중화에 대한 사대 이것은 성리학의 대표적인 인물 퇴계이황과 율곡이이 제자들의 의해 만들어진 이념과 산물이었다. 2012년 현재, 성리학은 학문의 주류에서 벗어 난지 오래된 상태이며, 잊혀 가는 학문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