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金鰲新話)의 ≪전등신화≫(剪燈新話) 모방설
- 금오신화와 전등신화의 비교를 중심으로
『금오신화』의 『전등신화』 모방설은 김안로(연산조 1481-1537)를 필두로 하여 시작되었다. 김안로는 『금오신화』의 내용이나 체제가 『전등신화』의 그것과 비슷함을 들어 모방설을 주장했는
먼저 작품의 소원을 국외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태평광기] 등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있긴 했으나 김안노를 필두로 하여 [전등신화]의 모방설로 집중되는데 조기영, 최남선, 김태준, 주왕산, 김기동, 박성의, 정주동, 이석래 등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들은 모두 작품의 소원을 [전등신화]에서 찾았다. 김
본문
김시습 (金時習) 은 강릉의 구족 (舊族) 으로서 세종 17년 (1435) 서울 반궁 (성균관) 북쪽에서 충순의 일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생후 8개월만에 글자를 보고 그 뜻을 알았다고 하며, 또 남의 말뜻을 알아들었다고 하여, 집현전 학자 최치원이 기특히 여기고 그 이름을 '시습' 이라 지어 주었다고
신화』이다.
(2) 생애
김시습은 1435년(세종 17년)서울에서 태어나 1493년(성종 24년) 59세로 생애를 마쳤다.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 청한자(淸寒子)· 벽산(碧山), 법호는 설잠(雪岑), 시호는 청간(淸簡)으로 원호, 이맹전, 남효온, 조려, 성담수와 함께 생육신(生六臣) 중
이율곡은 김시습이 "성질이 굳세고 곧아 세속을 분개하여 심기가 답답하고 편안하지 못하매 스스로 세상을 따라 오르고 내릴 수 없음을 헤아린 나머지 드디어 그 몸을 내던져 세상밖에서 놀았다."고 하였다. 김시습 자신은은 "선비는 자신과 세상이 모순이 있으면 물러가 살면서 自樂하는 것이 대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