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대와 본관(가문) 설명
전통시대여도 시대마다 의례에서 차이가 나타나기에, 필자는 전통시대 중에서도 조선시대, 조선시대 중에서도 17세기 후반 ~ 18세기 초반 정도를 상정하고 싶다. 나의 본관은 인동(仁同) 장씨이다. 인동 장씨는 원래 옥산(玉山) 장씨에서 지명의 변경으로 변화한 것이다. 인동
仁同)출신 장현광을 모신 동락서원을 중심으로 부녀자들이 춘유를 즐기며 부르던 노래
①시집살이에 골몰하던 색시가 바라고 바라던 기회를 얻어 친정에 돌아와 처녀시절의 벗들과 산수 좋은 곳에서 봄놀이한 것을 노래
②시집살이하던 새색시가 춘삼월에 시부모의 허락을 얻어 봄놀이 간 것을 노래
仁同)에 계신 어머니를 가 뵈었다. 이때 선생의 형인 경암공이 어머니를 모시고 인동현감으로 있었다. 남계정사에서 매일 시종(侍從)을 인동까지 보내어 문안을 드리게 하고 자신은 10일 마다 가 뵈었는데 큰길로 다니지 않고 산길로 다녔으므로 아무도 재상(宰相)의 행차인 줄을 몰랐다. 선생이 남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