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재(晦齋; 어두운 집)’이다. 이는 주희의 호가 ‘회암(晦菴; 어두운 집)’인 것에 따른 것이다. 주희의 이 호는 “땅 속은 어둡지만, 그곳에 뿌리를 깊이 박은 나무가 밝은 세상에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뜻이다.
32세 - 세자를 가르침, 33세 - 성균관의 전적(典籍), 인동(仁同) 현감, 춘추관(春秋館)
회재의 비판에 따르면 망기당은 불교에 상당히 심취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회재의 비판은 망기당 개인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방법, 수양 방법을 전면적으로 비판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망기당과의 무극대극 논변이 조선유학사상 제일 먼저 있었던 주요한
구인록 求仁錄》(1550)
《대학장구보유 大學章句補遺》(1549)
《중용구경연의 中庸九經衍義》(1553)
《봉선잡의 奉先雜儀》(1550)
“세상의 근본은 임금에게 있고, 임금의 도는 마음에 있으며, 마음의 방법은 인의에 있다. 그 길은 지극히 가까워서 멀지 않으며, 그 방법은 지극히 간단해서 복잡하
이언적의 아들이자 제자였던 이전인이 중국의 주희와 육구연의 논쟁을 전편으로 묶고 후편으로 이언적의 비평문과 편지를 묶어 만든 『태극문변』에 조한보의 사상을 잘 드러내는 시가 두 편 실려 있고, 『회재선생문집』에 조한보에게 보낸 시 다섯 수가 실려 있다.
2. 논쟁의 내용과 전개
①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