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조선 말기는 우리나라 역사상 안팎으로 가장 다사다난했던 때라고 볼 수 있다. 대외적인 면에서는 외세의 위협과 대내적으론 세도정치, 쇄국정책 민란, 기독교의 전래 등 국가와 사회가 어지럽고 급변하는 양상을 띠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그 이전의 조선 후기와는 많은 차이를 드러낸
Ⅱ.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와 ‘삶의 여유’
한국인을 대표하는 말이 ‘빨리 빨리’와 ‘대충 대충’이다. 이 두 개의 표현은 한국인의 조급한 성격을 강조한다. 이러한 한국인의 특성은 교통사고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오명을 남겼고 쉽게 흥분하고 쉽게 잊어버린다고 하여 ‘망각의
歲寒圖)" 이다. 글씨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뛰어난 재주를 보였던 추사는 '우연사출란도(偶然寫出蘭圖)' 등 여러 폭의 난초 그림과 '고사소요도(高士逍遙圖) 등 대여섯 폭의 산수화를 그렸지만 역시 가장 걸작은 겨울 소나무와 빈집을 그린 "세한도(歲寒圖)" 이다.
이 그림은 문자의 향기 [문자향(文字
歲寒圖)를 볼 때 옆에서 그림을 보던 선비가 한 마디 툭 던진다. “학문이 없는 자가 어찌 그림만 그린다고 명품이 되겠습니까?” 그러자 장승업은 술을 마시며 말한다. “그림은 그림 그대로 보기 좋으면 끝나는 거야.” 그렇다. 그림을 그림으로만 보고자 했기 때문에 사대부들이 강조하는 시서화라는
歲寒圖>
추사는 완원과 옹방강 두 스승의 영향으로 중국의 소식, 구양순등의 글씨체를 열심히 연구하여 40대에 이르기 전 추사체를 완성하였으며 특히 예서와 행서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룩하게 되었다. 추사가 박제가에게 배웠던 실사구시의 학문은 중국에서 들여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