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汝立의 조카 이진기가 말한 것처럼 선조는 “主昏日甚”하여 “임금으로서 도량이 부족한 사람”이었으며, “깊숙히 팔짱만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세”만을 계속하여 국가적 위기 상황을 바르게 인식조차도 하지 못한 임금이었다. 항상 선조 주변에는 아첨하는 무리들이 모여들어 지도층의
臨終偈
임종게
서산대사(西山大師 : 조선, 1520~1604)
서산대사(西山大師)
조선 중기 승려·승병장
1549년 승과에 급제하여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고 봉은사(奉恩寺) 주지로 지냄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에 연루되었다는 무고로 투옥되기도 하였음.
임진왜란 때 평양성 싸움에 참가해 공을
鄭汝立) 사건’을 계기로 일대 변동을 겪게 된다.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파된 것이다. 강광식, “붕당정치와 조선조 유교정치체제의 지배구조 변동양상 - 지배연합의 변동양상을 중심으로”, 『OUGHTOPIA』, Vol.24, No.1 (Summer 2009), 115-116. 서인들은 이이 사후, 세력이 약화되던 상황에서 역모사가 일어나
鄭汝立)의 모반사건을 다스리게 되자 서인(西人)의 영수로서 철저하게 동인 세력을 추방했고, 다음해 좌의정에 올랐으나 1591년 건저문제(建儲問題)를 제기하여 동인인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와 함께 광해군(光海君)의 책봉을 건의하기로 했다가 이산해의 계략에 빠져 혼자 광해군의 책봉을 건의했다.
1. 작가 소개 - 정철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
이명 - 자 : 계함(季涵)- 호 : 송강(松江)
시호 : 문청(文?)
출생 - 사망 : 1536년(중종 31) ~ 1593년(선조 26)
출생지 : 서울
본관 : 연일(延日)
시대 : 조선 중기
분야 : 서인
직업 : 문신, 문인
가족관계 : 아버지 - 정유침(鄭惟沈), 배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