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逑),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과 같은 거유(巨儒)들과 교유하면서 성리학에 심취하였다.
51세 때에 용진(龍津)에 있는 사제(莎堤)로 한음(漢陰)을 찾아가 종유(從遊)하면서 그를 대신하여 <사제곡(沙堤曲)>을 지었고 <누항사(陋巷詞)>를 지어 자기의 곤궁한 생활상을 노래하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1574년에 이황의 제자들이 그보다 4년 앞서 세상을 떠난 이황의 학덕을 기르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도산서원의 위치는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80번지에 위치하여 있다. 본래 이 자리는 이황이 은거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이 있던 곳인데, 지금은 안동댐의 건설로 인하여
유학과 경세론
1. 유학사상의 사적개관
1) 春秋戰國時代 - 원시유학
- 공자에 의해 요순삼대가 민본주의적 이상사회를 모델로 제시되면서 성립
- 공자는 기존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는 과도기의 사회적 위기를 천하무도 로 파악하고 周代(주대)의 질서인 周禮(주례)의 회복을 요구
- 현실
-도산서원-
퇴계 선생은 후학(後學)을 가르침에 있어 싫증을 내거나 귀찮아하지 않았으며, 친구처럼 대하여 끝내 스승으로 자처하지 않았다.
선비들이 멀리서 찾아와서 묻고 또 물으면, 그들의 정도의 깊이를 따라 일러주었으며, 반드시 뜻을 세우는 것[立志]으로 우선을 삼고, 주경(主敬)과 궁리(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