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론(근대 현대 평화론)과 평화사상
1. 에라스무스의『평화의 호소』
1) 근대최초의 평화론
에라스무스는 르네상스기의 인문주의자로, 그의 저작『평화의 호소』(1517년)는 근대최초의 평화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에라스무스는 수도사를 수행하면서 각 지역의 고전과 성서를 연구하였고, 인
동아시아의 평화를 깨뜨리는 일본의 야욕
※일본의 대륙침략 의도와 전개과정
천년 문화민족을 자부해온 나라에서 국권을 빼앗은 흉적의 우두머리를 처단하는 의사가 없다면 민족의 정기는 어디서 찾을 것이며, 500년 동안이나 학문을 장려해 왔다는 왕조의 정신은 어떻게 설명할 터인가. 조선왕
1. 평화는 종교의 책임
1918년~1939년 사이 유럽과 미국 전역에는 종교적 이유에 근거한 정교환 반전론이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1945년을 지나면서 오히려 공산주의라고 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 종교적 관점은 도덕적 진리의 빛에만 의지하여 핵전쟁의 문제를 판단해 보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가 주도하는 정신문화 역시 크게 흔들렸다. 그 결과 중세 유럽 문명의 기본 틀이 무너졌다. 무려 150년간이나 지속된 이 위기를 겪고 난 후 그로부터 형성 된 새로운 구조가 우리가 말하는 근대사의 시작이자 구체적인 내용이 된다.
이처럼 오늘의 서구를 특징짓는 모든 요소들은 본래부터
국가들간의 관계를 다른 시각으로 본 사상이 있었다. 유럽은 예전부터 하나의 단위체라는 사상이 존재했다. 또한 로마제국, 가톨릭 사상을 기반으로 유럽을 하나의 통일체로 묶었던 중세의 교황이 존재했다. 따라서 유럽사상가들은 유럽의 절대왕정국가들을 묶는 연합체가 출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