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間島)라 불렀다. 이것이 간도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 그 후 무산, 온성 사이의 주민이 도강하여 개간하는 자가 점차 급증하여 백두산 동쪽 기슭의 비옥한 토지는 개간하지 않은 곳이 없게 되어 이를 모두 일컬어 간도(間島)라 불렀다. 따라서 두만강과 압록강 대안지역의 개간지역을 자연스레 간도
4절 각국의 주장에 대한 근거
1.역사적 근거
간도지역 영유권을 위한 역사적 근거마련의 대표적인 예는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이다. 동북공정은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이다. 이를 통해 중국은 분열된 소수 민족을 통합할 수 있는 통일된 역
정계비에서 목극등이 지정한 수류발원처에 이르기까지 석돈 · 목책 · 토퇴를 쌓아 경계 표시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국경 설정이 잘못 되었음을 알게 되나, 결국 비문에 적혀진 대로 영토를 정하게 된다. 이것으로 백두산정계비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노계현, 『間島 嶺有權 紛爭史』, 한
간도영유권 문제에 대한 관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간도영유권분쟁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국민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우리는 간도영유권분쟁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간도에 살고 있는 조선족이 우리 민족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는 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