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반란', '동학농민운동', '동학혁명'등 으로 많은 해석이 있다. 그 중에서도 주로 실패한 혁명이냐 혁명운동이냐라는 문제와 혁명으로 보기에는 힘든 아직 혁명이나 혁명운동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농민봉기, 농민전쟁, 농민운동으로 보느냐로 크게 나누어 볼 수있겠다.
1894년에 일어난 갑오동학
농민전쟁의 전주곡에 해당하는 소민란 또는 소폭동의 성격을 가진 것이다. 제 2단계는 갑오농민전쟁의 제 1차 농민혁명의 단계이다. 1894년 음력 3월 20일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등의 지도하에 茂長(무장)에 남접도소를 설치하고 봉기를 준비하여 약 4천명의 동학농민군을 편성하였고 전주에 입성한 단계
농민군들은 반외세항거와 지켜지지 않은 폐정개혁안에 대한 반발로 다시 한번 2차 봉기를 한다.
민족적 위기와 봉건적 위기를 중첩하여 직면하게 된 상황에서 동학이라는 종교가 농민들과 만나게 되었다. 종래의 동학과 갑오농민전쟁의 관계에 대해서 세 가지 정도의 구분이 있다. 동학사상이 혁명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간략정리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군에서 시작된 동학계(東學系) 농민의 혁명운동.
그 규모와 이념적인면에서 농민봉기로 보지 않고 정치개혁을 외친 하나의 혁명으로 간주하며, 또 농민들이 궐기하여 부정과 외세(外勢)에 항거하였으므로 갑오농민전쟁이라고도 한다.
Ⅰ. 갑오농민전쟁
1. 갑오농민전쟁의 명칭에 관한 문제
1894년 연대기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일대 사건'이 1백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마땅한 제 이름을 갖지 못하고 있다. '갑오동학농민혁명'(甲午東學農民革命)은 한동안 역사의 뒷전에 익명으로 묻혀 있었고 한동안은 오명을 뒤집어쓴 채 역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