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간략정리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군에서 시작된 동학계(東學系) 농민의 혁명운동.
그 규모와 이념적인면에서 농민봉기로 보지 않고 정치개혁을 외친 하나의 혁명으로 간주하며, 또 농민들이 궐기하여 부정과 외세(外勢)에 항거하였으므로 갑오농민전쟁이라고도 한다.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등의 지도하에 茂長(무장)에 남접도소를 설치하고 봉기를 준비하여 약 4천명의 동학농민군을 편성하였고 전주에 입성한 단계로 5월 8일에 전주화약이 체결되었다. 이 제 1차 농민전쟁 단계로부터 본격적 농민혁명운동이 시작되었다. 제 3단계는 갑오농민전쟁의 농민집강소의 단계
농민전쟁, 갑오농민전쟁, 동학란(東學亂)이라고도 한다. 조선 관군(官軍)과 일본군의 연합부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동학혁명이 성공했다면 한국의 경우 민주주의가 100년이상 단축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한국을 진정으로 사랑한 서민들의 자발적이 민주화 운동으로 보고 있다.
이 장에서는 한국사의
전봉준 등 농민군 지도자들은 봉건적인 폐정을 개혁하려는 의도 아래 보다 확대된 민란을 일으키려고 했다. 여기에 하나의 요인이 되었던 것은 바로 안핵사의 폭압이었다. 안핵사 이용태는 사후처리를 빌미로, 요호부민들을 잡아다 난의 주모자로 몰고 봉기한 농민들을 모두 동학폭도로 몰아 처벌하는
전쟁도발에 나서게 되고 민족적 위기를 의식하게 된 농민군들은 반외세항거와 지켜지지 않은 폐정개혁안에 대한 반발로 다시 한번 2차 봉기를 한다.
민족적 위기와 봉건적 위기를 중첩하여 직면하게 된 상황에서 동학이라는 종교가 농민들과 만나게 되었다. 종래의 동학과 갑오농민전쟁의 관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