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정치적으로 반대파에게
몰리어 신하 및
선비들이 참혹하게
재화를 입은 사건
12사화
계유사화, 병자사화, 병인사화, 신사사화, 정미사화, 을유사화, 계축사화, 기사사화, 신임사화, 무오사화, 을사사화, 기묘사화
윤필상 이극균 성준 이세좌 권주 김굉필 이주 등 10여 명이 사형
(杖刑)을 당하고 평안북도 희천으로 유배된다. 다시 47세에 전라남도 순천시로 유배지를 옮긴다. 이 시기에 평안도 희천에서 정암 조광조에게 도학을 가르쳐서, 조선에서 도학의 정통을 이어주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후에 51세에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전라도 순천 유배지에서 효수형(梟首刑) 당하였다.
*폭정과 폐위 11 ~ 12년*
갑자사화 이후 연산군의 폭정은 정치적, 비정치적 분야를 가리지 않고 거의 비이성적 수준으로 일상화하였는데 그 폭정을 정치적, 비정치적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면
-정치적 분야 : 능상의 핵심적 원이었던 언론기관의 기능을 극도로 제한, 지평과 정언의 관직을 없앰, 사간원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외에도 8가지의 큰 사화가 있었다. 우리는 사화 중에서 시대 순으로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무오, 갑자, 기묘, 을사사화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2) 무오사화
(1) 배경
무오사화가 일어난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개인 간의 원한, 향촌사회로의 질서 확
3.결론
:4대사화는 1575년(선조 8)에 이르러 당쟁(黨爭)이 일어나기 전의 선비들에 대한 옥사였다. 그러나 사화는 소수인의 음모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 아니고, 파당을 가진 다수인의 공공연한 논쟁이 따르는 대립과 투쟁에서 패자는 반역자로 몰려 지위를 빼앗기거나 목숨을 잃고, 한 파가 승리하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