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김굉필은 황해도 단종 2년(1454년) 5월 24일에 서울 정동에서 태어나서, 달성군 현풍에서 성장하였고, 연산군 10년(1504년) 51세의 나이로 전라도 순천 유배지에서 죽었다. 후에 처가에 있으면서 가까운 곳에 한훤당(寒暄堂)으로 부르는 작은 서재를 짓고, 뒤에 현풍 서쪽 대니산 남쪽 솔례촌(率禮村
레포트를 쓰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약간 의아한 면도 없지 않았다. 광양이 뭐가 대단한 게 있다고 특별전시전 까지 열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광양전을 보고나서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게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나는 이번 레포트에서 크게
1. 조광조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1) 조광조의 생애
1482년 음력 8월 10일생으로 자는 효직, 호는 정암이다. 개국공신 조온의 5대손으로 사헌 부 감찰 조원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김굉필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한 조광조는 1510 년 29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515년 조지서사지로 임명
*폭정과 폐위 11 ~ 12년*
갑자사화 이후 연산군의 폭정은 정치적, 비정치적 분야를 가리지 않고 거의 비이성적 수준으로 일상화하였는데 그 폭정을 정치적, 비정치적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면
-정치적 분야 : 능상의 핵심적 원이었던 언론기관의 기능을 극도로 제한, 지평과 정언의 관직을 없앰, 사간원
(1)약전
자는 덕회(德晦), 호는 여헌(旅軒)이다.
고려 상장군 금용(金用)의 후손이며 덕녕부윤(德寧府尹) 안세(安世)의 8대손으로 증 이조판서 열의 아들로 명종 9년(1554)에 인동 남산에서 태어났다.
7세때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8세 때 부친을 잃고 11세때 학자인 신당 정붕의 아들 정각(鄭慤)이 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