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내부에서의 상호 경쟁 관계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다같이 12마당에서 탈락될 운명에 처한 것들인데 바로여기에 신재효 개인의 의도적 선택에 의해 6마당의 반열에 끼어들었는지를 가늠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변강쇠가는 근대에까지 불려 졌다고는 해도 다른 작품들 보다
Ⅱ. 본론
1.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
판소리 사설을 발생시킨 판소리는 17~18세기에 나타난 한국의 독특한 연예(演藝)형태인데, 이것은 고소설에 많은 영향을 끼쳐 이른바 판소리계 소설을 형성하게 하였다. 조선후기에 등장한 판소리는 음악과 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종합예술이며 또한 구비 전승
작품에 수용되었다. 이처럼 설화를 적극 수용한 것은 판소리계 소설의 일반적 특징과 연결된다.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하나로 불리다가 전승이 중단되고, 필사본마저도 널리 전파되지 않은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민담이 소설로 발전된 것으로 '장자못 설화'에서 그 근원을 찾을
변강쇠가」를 전후반으로 나누어 구조적 의미에 대해 논의를 하기도 하고, 무속제의의 측면에서 연구를 하기도 했으며, 강쇠와 옹녀, 뎁득이를 민중의 상징으로 보고 장승을 관권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본 보고서에서는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 중「성두본」을 기본으로 하여 문제
강쇠와 옹녀는 혼인 후에도 유랑을 계속한다. 옹녀는 생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는 데 반해, 강쇠는 도리어 온갖 못된 짓을 다 저지른다. 결국 이들은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에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나무하러 간 강쇠가 장승을 패 와서 군불을 때고 자다가 장승 동티(動土 : 건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