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중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이러한 강호가사에 대하여 연구해보도록 할 것이다. 먼저, 강호가사의 작자층과 시기를 비롯하여 ‘강호’에 대한 의미를 다층적으로 접근해 보고, 전반적인 유형화된 특징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강호가사를 창작했던 가장 작가 송순과 정철에 대하여 살
중심으로 한 욕구의 좌절 및 성취와, 그 주제를 구현하거나 표출하는 방식의 다변화 등은 특히 중요한 변모이다. 사대부의 가사는 서정적인 기풍이 퇴조했으며, 기행가사·유배가사류 등에서 생기있게 나타나고 있듯이 구체적인 현실을 담아내려는 경향이 보인다.
일제시대의 가사는 사회적 격변기의
중심지격의 고장이 그 옛날 창평현이며 현재의 가사문화권에 해당하는 담양군 남면이다. 이러한 가사문화권은 정철과 송순 등 당대 최고의 문인이 다수 거쳐 갔으며 성산별곡, 속미인곡, 사미인곡과 같은 주옥같은 가사문학 작품을 낳았다. 이러한 명백한 역사적 사실은 오늘날 수많은 국문학도들의
몸이 이렁굼도 亦君恩 이샷다’ 시조 종장 형식을 취하는 낙구로, 시조 문학이 가사에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낙구가 쓰인 작품으로는 맹사성의 <강호사시가>, 악장 <감군은> 등이 있다
는 말로 마무리를 삼았다 자신의 취흥을 임금의 은총으로 여김으로써 조정 신하의 자세를 견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