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었다. 沿海州郡의 賦稅徵收가 거의 중단되어 국가의 세입이 감축되었고, 그나마 징수된 稅穀마저 漕運도중에 약탈당하는 등 租稅輸送 자체마저 위협받았다.
따라서 陳荒된 지역의 농지를 再墾하고 耕種하는 일은 조선의 절실한 과제였다. 趙浚은 濱海田地의 황폐를 지적하고 荒地를 개간한
1. 들어가며
‘개간(開墾)’은 산림이나 원야(原野), 또는 하천부지를 농업상 이용하기 위해 농지로 조성하고 그에 따라 관개, 배수시설 등을 신설, 변경하는 일을 총칭한다. ‘농업’을 국가 주요 산업으로 육성한 조선 시대에도 개간은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개간의 문제는 국가의 권농정책과
국가가 행정력을 동원하여 농업발달을 추진하는 권농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수리시설 축조와 관리사업이었다. 또 정월대보름·단오·한가위 같은 농가의 전통명절들도 이때부터 자리잡았다.
중세시대를 통해 토지의 개간과 상경화(常耕化), 집약화
농업 조건이 불리한 지역에 대해서는 국토 보전 및 지역 사회의 유지 관점에서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 이다. 농촌 지역의 활성화에는 반드시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리고 농촌 정책은 전국 획일적 관점이 아니라 반드시 각 지역의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서 실시되어야 한
계곡을 막아 물을 가두어두는 저수지인 제언(堤堰)중십의 수리시설을 만들었다.
조선왕조의 위정자들은 농사에 필수불가결한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적기부터 수리시설을 축조하는 데 주목하였다.
조선조 현종 3년 (1662) '진휼청제언사목'이라는 이른바 정책발표를 한 이래 조선전기(15세기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