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개혁신앙을 위한 교회
1. 조직신학자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
1.1 박형룡 박사의 신학적 배경
박형룡 박사의 신학은 구 프린스톤 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박형룡 박사의 신학은 평양 숭실 전문학교에서 시작된 것이며 당시 선교사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박형룡 박사의 신학
교회사관은 보수진영에서는 복음을 축소할 위험이 있는 사관으로, 진보진영에서는 민중이 없는 사관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선교와 민족 그리고 민중의 문제는 교회의 정체성을 달리하는 문제가 아니라 용어 선택의 문제다. 보수진영의 표현대로 하면 신앙과 경건의 문제이고, 진보진영의 표
교회 연합적 선교였으며 웨슬리 형제의 선교는 소그룹모임의 동력화, 순회전도사역을 통한 평신도지도력의 활성화, 복음의 수용성이 있는 계층에 대한 전략적 선교, 사회봉사를 통한 총체적 선교, 음악의 대중화를 통한 선교였다.
18~19세기의 신앙선교단체들을 통한 선교운동은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개혁의 조짐은 자연스럽게 결속되고 있었으며, 스위스에서 츠빙글리(Ulrich Zwingli : 1484∼1531), 그리고 프랑스의 칼빈(Calvin : 1509∼1564) 등이 있었다. 그러나 스위스나 프랑스의 종교개혁은 그 내용이 성직자의 결혼, 육식의 자유, 화상(畵像)의 철거 등 다소 휴머니즘적인 방향에서 시작되었다. 교회음악에
교회 수장을 겸했으며, 성직자들은 국가에 봉사하는 국가 관리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영방군주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독일의 분열은 가속화되었고, 이에 따라 주변의 중앙집권화를 이룬 국가들에 비하여 낙후되는 경향을 보인다.
문화적 편견을 부지불식간에 객관화하여 잉글랜드에서 종교개혁의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