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성된 부족국가체제로써 각부에서 차출되는 강력한 전사들이 핵심이 되어 대외적인 발전을 추진해 나아갔던 것이다. 「동이」라는 「이」자가 스스로 말하다시피 그들은 강력으로써 이름났으며, 한제국을 한 때 찬탈한 왕망도 고구려의 저격부대를 그의 대흉노전에 이용하려고까지 하였던 것이다.
멸망 → 고조선의 고토에 한 4군 설치 → 토착민의 강한 반 발 → A.D. 313년 한4군의 완전 소멸
3) 부족연맹사회
B.C. 4세기경 철기문화의 유입 → 농업생산력 증대, 경제기반의 확대, 여러 계통의 융합 →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성립
정치․사회
경제
제천행사
풍
고구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광개토왕은 백제의 수도인 한성(漢城)을 침공하여 남쪽 영토를 임진강과 한강까지 확장시켰고, 신라의 내물왕을 원조하여 왜구를 격퇴하였다. 또한 북으로 후연을 쳐서 요동을 완전히 차지하고, 아울러 요서 지방의 일부까지 진출하였다. 광개토대왕은 숙신과 동
산업에서는 기후에 맞는 농업을 위주로 하면서 목축을 겸하였다. 반면 정치체제의 진전은 비교적 느린 편이었고, 한 대 이후 북방의 유목민과 남방의 고구려의 틈바구니에서 국가로의 성장을 지속해 나가지만, 결국 가야(伽倻)와 마찬가지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전환하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다.
고구려는 압록강 중류의 산악지방에 자리한 작은 국가에서 출발하여 그 전성기에는 남쪽으로 한반도 중부이북, 서쪽으로 요하, 북쪽으로 아무르강, 동쪽으로는 연해주일대를 차지하는 대제국으로 발전한다.
이제 그토록 강성했던 한 국가의 건국신화를 살펴보고, 그에 대한 민중들의 의식을 알아보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