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정치는 기존의 권문세족과 이 시기에 새로이 성장한 신진사대부(新進士大夫)가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전개되었다.
앞서 整治都監의 활동은 비록 실패하였지만, 권문세족과 부원세력간의 정치적 대립이 표면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대립은 충목왕이 죽자 왕위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
고려의 관제를 원래모습으로 되돌려 놓았고 몽고의 풍속을 일체 금지시키는 등 반원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공민왕의 개혁정치는 급격한 반원 자주정책과 신돈의 등용으로 친원파인 권문세족들의 강력한 반발을 제어하지 못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Ⅱ신진사대부의 등장과
◎고려말의 상황
1.권문세가의 횡포
권문 세가들이 국정을 좌우하는 한편, 원의 세력과 결탁하여 거대한 농장을 소유하고 수탈을 자행하여 전제를 문란하게 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다.
반원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원의 세력과 싸워야 했고, 안으로는 권문세가를 눌러야 했는데, 원의 압력으로
고려 백성의 희망은 신진사대부들이 되었는데, 문인 출신인 성리학자들로 이루어진 신진사대부들이 무력을 갖추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그들은 무력을 가진 무장과 결탁하고자 하였다. 이런 이유에서 이성계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성계가 고려 전체에 이름을 떨치게 된 계기는 우
건국의 정당성과 필연성을 역설하고 민심이 동요하지 않도록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제도와 사상의 개편이 필요했다. 조동일,『한국문학통사』2, 지식산업사, 1999, 254-255쪽. 따라서 신진사대부를 비롯한 집권층을 중심으로 건국의 정당성을 역설한 작품이나 태조의 업적을 찬양하는 작품이 등장하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