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국사
1395년(태조 4) 정도전(鄭道傳), 정총(鄭摠) 등이 쓴 고려의 역사서
고려왕조 실록과 민지(閔漬)의 《본국편년강목(本國編年綱目)》, 이인복(李仁復)·이색(李穡)의 《금경록(金鏡錄)》을 참고하고 이제현의 사론(史論)을 수록하여 만들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총 37권의 편년체 사
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경우와 같이 커다란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사서의 내용에 국가적인 목적이나 통치자의 목적이 크게 작용하기 쉽다는 점이다. 역사의 서술이 창의적인 해석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원전을 줄이거나 추가하는 정도에 그치는 전근대적인 동양
고려사, 고려사절요를 중심으로 붕괴기에 관한 분석을 해봄으로서 붕괴기가 어떠했는지 직접 보았다. 무인정권 붕괴기가 정말로 단순히 무인정권의 잔재인지 아니면 무인정권전체의 성격을 보여주는 시기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고려왕실과 그 측근을 한 집단으로, 김준-임연-임유무, 삼별초와 같은
그 반란」, 『고려시대의 연구』, 아세아문화사, 1980.
이나 일부 학자들은 묘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또 이러한 흐름에 반대하며 재야사학이나 학계의 다른 일부 학자들은 신채호의 사상을 옹호하고, 묘청의 난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상반되는 두 입장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건국신화(高麗建國神話)’도 고려인들의 행위의 모범이고 가치의 기준이며, 국가가 갖는 위엄을 상징하는 구실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본고의 주제인 ‘고려건국신화(高麗建國神話)’는 『고려사(高麗史)』첫 장 -「고려세계(高麗世系)」에 기록된 태조 왕건(太祖 王建)의 가문에 대한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