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국사
1395년(태조 4) 정도전(鄭道傳), 정총(鄭摠) 등이 쓴 고려의 역사서
고려왕조 실록과 민지(閔漬)의 《본국편년강목(本國編年綱目)》, 이인복(李仁復)·이색(李穡)의 《금경록(金鏡錄)》을 참고하고 이제현의 사론(史論)을 수록하여 만들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총 37권의 편년체 사
역사 서술법을 따른다. 따라서 체재적인 면에서의 균형이 중시된다. 또한 그것은 체재에 구애받지 않고 쓰고 싶은 대로 쓰는 사찬사서와 대조가 되는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경우와 같이 커다란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사서의 내용에 국가적인 목적이나 통
고려사, 고려사절요를 중심으로 붕괴기에 관한 분석을 해봄으로서 붕괴기가 어떠했는지 직접 보았다. 무인정권 붕괴기가 정말로 단순히 무인정권의 잔재인지 아니면 무인정권전체의 성격을 보여주는 시기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고려왕실과 그 측근을 한 집단으로, 김준-임연-임유무, 삼별초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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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니라 시 무비를 모함하여 그녀를 중심으로 모인 세력들을 흔들기 위한 치밀한 정치적 작전의 일환으로 지어지고 유포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한다. 이것은 마치 <서동요> <서동요>는 《삼국유사》에 전해내려 오는데 《삼국유사》는 충렬왕 7년에
고려사라기보다는 고대사였다.『삼국사절요』서문에서 서거정은 “세조가 삼국사의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못한 것을 개탄하였다”라고 밝히고 있다.『동국통감』편찬에 앞서 고대사 부분만을 다룬『삼국사절요』를 편찬하게 된 배경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럴 때 세조가 불만을 가졌던 역사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