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는 입과 입을 통해 계속 불러왔으며, 관혼상제의 잊혀져가는 풍습도 지켜왔고 현재에도 열심히 이어지고 있다. 먼저 고려인 이주역사를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고려인의 생활 문화를 알아본다. 또 고려인의 예술 활동을 설명하기 위하여 공연예술의 꽃인 고려극장을 중심으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서론
고려인, 카레이스키는 구소련 붕괴 후의 독립국가연합 전체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 국가에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이 포함된다. 약 50만 명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주하였으며
민족들과 함께 가혹한 분리ㆍ차별정책에 휘말려 1937년 9월 9일부터 10월 말까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이들은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 내팽개쳐졌는데, 당시 고려인 수는 17만 50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1만 1000여 명이 도중에 숨졌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강한 생명력
중앙아시아를 거쳐 서북 인도로 수출되는 주요 교역품이 비단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해 이 중국으로부터 인도까지로 이어진 교역로를 독일어로 '자이덴슈트라센'(실크로드)이라고 명명했다. 이리하여 '실크로드'란 이름이 처음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 길이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과 전 생애를 재사할린동포들의 영주귀국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사할린동포와 한국과의 연결고리로 해 일본과 한국정부로부터 꾸준히 요구하고 어떤 형태이든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평생을 영주귀국실현에 몸 바쳤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 의해 일본인 변호사 다가이 겐이치(高木建)가 '가라후토 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