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를 관료제 사회로 보아야 하는지 귀족제 사회로 보아야 하는지의 문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고 할 수 있겠다. 동서양의 귀족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에 비추어 “귀족제 사회”로 보는 것은 그다지 무리가 없지만 “관료제 사회”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훨씬 더 많
고려의 실정에 맞게 중서성과 문하성을 합친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의 2성으로 운영하였다. 이 밖에도 중추원, 삼사, 어사대, 고려만의 독자적인 정치기구인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각 기구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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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문벌귀족사회는 최승로의 시무 28조가 나왔던
-박용운『고려시대사』(1985)→‘문벌귀족사회’
①고려의 지배세력은 음서제와 공음전을 정치경제적 기반으로 하여 왕실이나 유력가문과 폐쇄적 통혼권을 형성하여 가문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②과거제는 단순히 개인의 인품이나 실력에 입각한 인재선발의 목적보다 더 넓은 사회계 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