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하여 특출한 언어미를 보여 주었다는 데 문학사적 의의를 더해준다.
2. 율곡 이이와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1) 생애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는 강원도 강릉 북평 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俶獻), 호는 율곡(栗谷)ㆍ석담(石潭),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구이든 간에 무엇을 배울 것인가의 문제는 이미 자명한 실천명제로서 그들 앞에 놓여 있다. 고인의 길을 따르는 배움의 길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의 문제인 것이다.
其四
당시(當時)에 녀던 길흘 몃 할을 버려 두고
어듸 가 다니다가 이제아 도라온고?
이제야 도라오나니 년듸 마음 마르
구해 보았지만 도저히 풀길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3년이 지나갔다.
18살이 되던 해 가을 어느 날 울적한 심회를 풀길이 없어 발길 닿는 대로 거닐다 들린 봉은사에서 불교서적을 뒤적이게 되었고 이듬해에 금강산으로 들어가 의암이라는 법명으로 불교 수행을 하였다. 율곡의 입산은 인생의 삶과
전통적으로 자연은 인간의 삶의 터전으로서 존재해 왔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인식은 동양인들에게는 더욱 각별하여 조선시대의 사대부들과 같은 경우에는 그들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공간을 자연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연이 조화가 이루어진 완벽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현실 세계를 자연
Ⅰ.서론
전통적으로 자연은 인간의 삶의 터전으로서 존재해 왔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인식은 동양인들에게는 더욱 각별하여 조선시대의 사대부들과 같은 경우에는 그들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공간을 자연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연이 조화가 이루어진 완벽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현